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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17:11 수정 : 2019.12.02 01:02

【황진미의 TV 톡톡】

이것은 흡사 평행우주다. <보좌관 시즌2>(제이티비시·JTBC)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연일 뉴스에 오르고, 누구나 검찰개혁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드라마에서 현실의 퍼즐들을 재조립한 것 같은 유사현실이 펼쳐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송희섭(김갑수) 법무부 장관의 비위 증거들이 검찰 손에 넘어가자,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권과 수사 외압을 통해 검찰 장악을 시도한다. 갓 취임한 법무부 장관이 국민적 인기도 얻고 정적도 제거할 겸, 평소 외압에 맞서 수사에만 집중하던 최경철(정만식)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기용해 고위공직자 수사의 칼자루를 쥐여주었는데, 최경철 지검장의 수사망에 법무부 장관이 걸려든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자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움직여 사건을 이첩하도록 한다. 그뿐인가. 국회 검찰개혁 특위에서 장태준(이정재)이 검찰개혁의 본질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은 어찌나 기시감이 돋던지, 시사프로그램으로 오인할 지경이다.

우연치곤 얄궂다. 시즌2 촬영 중에 조국 사태가 터졌으니 말이다. 우연이라기보단 필연에 가깝다. 지난여름 방영되었던 시즌1부터 노회찬의 죽음, 이명박의 동영상, 마티즈 속 번개탄, 노량진 수산시장 재개발, 내부 고발자의 파탄 난 삶, 젊은 하청노동자의 산재, 국회의원 여성혐오 발언, 낙태죄 위헌 등을 담아낼 만큼 현실정치의 속살을 디테일하게 담아왔으니, 그 탄력으로 시즌2를 찍은 결과 현실의 모사가 아닌 현실의 쌍생아가 튀어나온 것이다.

<보좌관>은 2700명의 국회 보좌진들의 직업 세계를 그린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거물들끼리 암투를 보여주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물론 드라마는 이엘리야, 박효주, 김동준 등이 연기하는 보좌진들이 어떻게 법과 제도를 통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또한 정웅인, 조복래가 연기하는 보좌관들이 어떻게 인맥과 편법을 활용해 정보를 캐내고 공작을 벌이는지도 그린다.

이를 통해 드라마가 폭로하는 정치의 진풍경이 실로 놀랍다. 재벌 회장을 정점으로 한 정경유착의 비밀조직, 화학물질 누출사고 은폐, 살인기업을 막을 법을 만들려는 국회의원을 겁박하기, 법안 처리 지연을 위해 카피 법안을 먼저 발표하기,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줄서기와 상납, 당선 무효로 낙마시키기 위한 선관위를 통한 공작, 국회 파행을 통한 국정조사 무력화, 역외 탈세와 흔적 지우기, 검찰 조사 중 투신 사망으로 사건 종결하기 등등.

드라마는 다양한 욕망의 주체들이 얽힌 정치판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샐틈없는 극본과 연출, 누구 하나 밀리지 않는 연기가 재미를 보장한다. 이정재, 신민아의 연기도 좋지만, 김갑수, 김홍파, 정만식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보좌관 시즌2>가 여타의 정치고발 드라마들과 다른 점은 단단한 짜임새에 있다. 단순한 선악 구도로 몰아가거나, 인물들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대결을 펼치거나, 무리한 장면으로 감정 몰이를 해대는 드라마와 비교하면 만듦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보좌관 시즌2>의 세계에도 선악은 있다. 그러나 이분법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시즌1에서 장태준은 선인인지 악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정치에 입문했지만,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거물 정치인 송희섭의 보좌관이 된다. 송희섭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던 중 토사구팽당할 것을 눈치챈 장태준은 송희섭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결국 장태준은 송희섭에게 굴복하고 정경유착의 한배에 탄다. 시즌1의 마지막은 장태준이 신념과 동료를 버리고, 오직 권력을 갖기 위해 ‘흑화’할 임을 강하게 암시했다. 하지만 시즌2의 장태준은 ‘흑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드라마는 그에게 드리웠던 의혹들을 수거하고, 장태준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가 여전히 공정한 세상을 추구하며, 내부자의 자리에서 정경유착의 고리들을 쳐내고 부패의 뿌리를 제거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도록 한다.

하지만 그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의 정치가 ‘법과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본질적 의미의 정치보다 협잡과 권력다툼에 ‘올인’하는 이전투구로서의 정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념을 펴기 위해 더 많은 권력이 필요하며, 그래서 부패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논리를 구사하는 정치인이 도달할 길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수많은 386 정치인들이 보여주었듯, ‘내로남불’의 위선과 도덕적 파산이다.

그보다는 강선영(신민아) 의원실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강선영 의원은 입법에 대한 열정과 법을 다루는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거물 정치인들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얻을 것을 취하는 등 탁월한 정무 감각을 보인다. 그가 시즌2에서 영입한 이 보좌관(박효주) 역시 일 처리 능력으로 보나 정치적 균형감으로 보나, 대단한 베테랑이다. 그런 이 보좌관이 출산 후 육아를 하다가 복직했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화려한 경력의 엄마들이 대화하던 장면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이처럼 능력 있는 여성들이 단지 육아 때문에 고용이 단절된 채 사회생활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회적 낭비이자 차별인지 절감할 수 있다.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 보좌관의 짝패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여성 정치의 미래는 분명 다를 것이다. 다가올 총선에서 장태준보다 강선영이 재선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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