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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0 18:35 수정 : 2015.05.18 08:57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토토, 우리는 이제 더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은 느낌이야!”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로 온 뒤 강아지 토토에게 한 말은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은유다. 지금 우리는 도로시의 이 은유를 토해내야 할 처지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6년이 지나자, 비로소 그 결과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디플레이션이 어른거린다. 인플레는 우리가 겪었던 경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성장 그 자체였고, 성장의 부작용이기도 했다. 우리는 인플레를 상수에 두고 모든 재테크를 했다. 그런 인플레 대신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디플레이션이 이제 우리에게 다가온다.

금융위기 이후 3대 중앙은행인 미국 연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이 7조달러를 풀었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부터 엔화 절하, 돈풀기 등 가장 공격적인 경기진작책인 아베노믹스를 구사했다. 하지만 최근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가장 건실한 경제라는 독일도 지난 2분기 -0.2% 성장을 했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들은 전례없던 인플레 목표치까지 설정했으나, 2%대 인플레는 이제 희망사항에 그친다. 전후 세계경제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인플레를 오히려 갈구하는 시대가 됐다.

디플레는 과장된 우려라는 반론도 크다. 물가가 아직까지 마이너스 성장세가 아니고, 1930년대 대공황 때와는 달리 중앙은행들이 대처할 여력이 있다는 논지다. 디플레라기보다는 디스인플레라고도 주장한다. 역스태그네이션이라도 한다. 1970년대 불황 속에서 물가만 올랐던 스태그네이션과는 달리 불황 속에서 물가가 내리거나 고착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혹은 믹스트플레이션(MixedFlation)이라고도 주장한다. 주식 등 자산은 오르는데, 일반 물가는 떨어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디플레 여부를 따지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이미 고착화되는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에 처해 있다. 채권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이를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이라고 불렀다. 세계경제의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람들도 일상 삶에서 느끼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부터 디플레를 가장 강력히 경고한 이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다. 그는 부자들인 채권자들의 채권 가치를 떨어뜨리고 빈자들인 채무자들의 채무 부담을 덜어줘야 디플레에 빠지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더 공격적인 돈풀기와 적극적인 국가의 재정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각국 정부가 이를 망설이는 것은 부자들의 계급이익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디플레를 포함한 모든 불황의 근원은 대중들의 구매력 저하다. 결국 대중들의 지갑이 이전보다 채워져야지 불황은 끝난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야 하는 처방은 여기서 나온다.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돈이 풀렸으나, 인플레는 고사하고 디플레 위기가 도래했다. 단언컨대 소득의 양극화 구조 때문이다. 돈을 풀어도 대중들의 지갑에 들어가지 않고 부자들의 금고에 쌓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퀘벡의 세계화연구센터(CRG)는 금융위기 돈풀기인 양적완화가 오히려 디플레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 양극화 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풀기는 오히려 그 구조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1930년대 대공황을 부른 금본위제 등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도로시는 겁쟁이 사자, 뇌 없는 허수아비, 마음 없는 녹슨 양철 나무꾼을 구제하고 힘을 합쳐 고향 캔자스로 돌아온다. 이들은 대공황 전야의 힘없던 민중을 상징한다. 디플레 불황의 해법은 바로 도로시가 말해준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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