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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2 18:45 수정 : 2015.05.18 08:57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한번 보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21세기판 격돌이며, 한국은 지금 그 충돌점에 끼여 있다.

유라시아의 역사는 유목세력과 정주세력의 쟁패사다. 초원의 유목세력들과 해안의 정주세력들의 투쟁사다. 고대와 중세까지 대륙의 초원에서 발원한 흉노, 스키타이, 몽골 등 유목세력들은 해안의 정주 농경세력들을 유린했다. 그러면서 정주세력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한족도 수천년에 걸친 서북방 ‘오랑캐’들의 집합이나 다름없다. 서방 세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인도유럽어족 역시 흑해 북쪽 연안에서 출발해 유럽과 인도 등으로 흩어진 쿠르간 부족이었다.

유목세력과 정주세력의 쟁패는 중국 청 왕조 강희·건륭제 때 현재 신장위구르 지역인 중가르의 완전한 정벌로 변곡점을 맞는다. 이 정벌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 중앙의 초원 유목세력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 총포라는 근대 문명의 힘이 작용했다.

초원의 유목세력들로 대표되던 유라시아 대륙 내부의 에너지는 대륙세력으로, 정주세력은 해양세력으로 전화됐다. 대륙세력의 대표자가 러시아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격돌한 19세기 제국주의 패권 쟁패의 절정은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다. 이는 현대에 들어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바뀌었다.

현대 지정학의 아버지 핼퍼드 매킨더는 유럽의 문명은 아시아의 침략에 맞선 투쟁의 산물로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세계 정치의 중심축 지역은 유로-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이라며 “이는 고대에는 배로는 접근할 수 없어 기마 유목민들에게 열렸던 지역이나 현재는 철도망으로 뒤덮여 가는 곳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 등 유럽 제국들이 해로로 세력을 확장하는 속도와 비견되게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서 급속히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이 말은 러시아를 봉쇄해야 한다는 지정학 전략의 주문이다. 그의 이 말대로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서구 해양세력은 러시아와 소련을 봉쇄했고, 성공했다. 미국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역시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의 전략은 유라시아 대륙 내부를 장악하는 패권세력을 불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서구 해양세력의 득세는 유라시아 대륙 내부의 유기성이 철저히 억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 해안과 내부는 철저히 분절됐다. 매킨더가 충고한 중심축 지역과 주변 지역을 절연시키라는 전략의 결과다.

매킨더가 유일하게 발표한 논문인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1904년)의 말미는 의미심장하게 끝난다. 그는 중국이 러시아 영토를 잠식할 우려를 제기하며, 이는 중국을 압도적인 지정학적 패권세력으로 떠오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을 대신하는 중국은 이제 자신들의 경제력과 영향력을 유라시아 대륙 내부로 투사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해상 및 육상 실크로드의 복원으로 분절된 유라시아 대륙 내부와 해안의 유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켄트 콜더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말하는 ‘신대륙주의’이기도 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시진핑 체제 출범 이래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으로 첫 과실을 따려고 한다.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과 일본마저 이 은행 참가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대륙 봉쇄 정책 강화로 맞서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란 유라시아 대륙의 태평양 연안 봉쇄에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는 그 일환이다. 자신이 뿌린 금융위기에서 먼저 탈출해 힘을 회복하는 미국, 유라시아로 힘을 투사하는 중국 사이의 그레이트 게임의 출발점에 한반도가 위치해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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