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2 18:57
수정 : 2018.08.02 19:16
[책과 생각]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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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재단 누리집에서 소개하는 ‘아시아의 미’ 연구 지원 사업. 출처 아모레퍼시픽재단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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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메세나협회는 2017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전년도보다 4.1% 줄어든 1943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줄곧 증가하던 지원액이 6년 만에 줄어든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 기부금의 축소, 청탁금지법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기업 출연 재단을 통한 지원금 역시 감소했다.
한국메세나협회의 지원 분야에는 공연예술과 문학뿐 아니라 뮤지컬, 영상미디어 등도 있지만 출판은 표식조차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 통계를 보면, 연간 약 6만 종의 책이 평균 1400부 정도 발행되는데 보나마나 적자인 책이 태반이다. 나아가 출판사마다 내용이 좋아도 채산성이 낮아서 책으로 탄생하지 못한 채 사산되는 원고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펴고 있지만, 올해의 경우 137종의 책만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곳이 아모레퍼시픽재단이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 서성환 회장이 학술·교육·문화 후원을 위해 1973년 설립한 재단에서는 2008년부터 학술연구비 지원에 출판 지원을 추가했고, 2010년부터는 전담 출판사 선정 제도를 두었다. 화장품 회사가 만든 재단답게 ‘아시아의 미’(Asian Beauty) 연구 지원(건당 연구 지원금 3천만 원 및 출판 비용 별도 지원)과 ‘아시아 미의 발견’ 시리즈 등을 펴낸다. 기업의 출판 지원 사례로 전무후무한 용적을 보여준 대우재단의 ‘대우학술총서’가 1983년부터 현재까지 619종의 출판 성과를 기록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모레만 같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귀한 출판 지원이다. 이렇게 하는 기업을 더는 찾기 어렵다.
대안은 출판단체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출판 메세나’를 시행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제안은 새롭지 않다. 오래전부터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 등에 여러 차례 사업 항목으로 올랐지만 실행력 부족으로 사장되었다. 기업이 출판 활동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고, 좋은 원고를 가진 출판사에는 출판 기회를 확장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연간 1천 종 이상의 질 높은 책을 펴내는 지원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그 실익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여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안성맞춤이다.
책이 안 팔려서 야단이다. 문제는 출판사의 경영난만이 아니라 사회의 지적 재생산 시스템이 상업적 회로에만 의존할 때 나타나는 다양성의 탈진이다. 그래서 안 팔리더라도 의미 있는 책들이 나올 수 있는 안전망을 확보하는 방법의 하나가 출판 메세나다. 1천 종 이상의 좋은 책을 줄기차게 펴낸 ‘책세상’ 출판사가 누리집에 게재한 것처럼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투명한 창이자 우리의 영혼을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기업과 책이 만나 미래를 키우는 출판 메세나 사업에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을 바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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