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4 19:38
수정 : 2015.07.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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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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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방드르디, 야생의 삶
미셸 투르니에 지음, 고봉만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2014)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인간의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는 교황의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책이 있다. 이를테면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이 그렇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아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방드르디는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낸 프라이데이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원작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은 만날 사람 하나 없는 무인도에서도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일꾼이다. <방드르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 짓고 씨 뿌리고 염소 기르고 끝없이 일을 한다.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동하고 규칙대로 살려고 애쓰고 섬의 자원을 샅샅이 조사한다. 그렇지만 로빈슨은 이내 지쳤다. 무엇보다도 일을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 짓을 하는가 넌더리가 났다. 고독은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벽마다 교훈을 새겨놓았다. 가난은 인간의 제일가는 악덕이다, 같은 말들이다. 그러다가 위기에 빠진 방드르디를 구해낸다. 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일을 가르치고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맺는다. 방드르디는 땅을 개간하고 씨 뿌리고 거북의 알로 오믈렛을 만들고 로빈슨의 구두를 닦고 저녁에는 하인의 옷을 입고 로빈슨의 시중을 들었다. 그렇지만 방드르디는 주인이 없으면 해변에서 춤추고 놀았다. 방드르디는 어느날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화약통을 폭발시키고 그 결과 로빈슨이 만든 모든 것이 폭파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 뒤로 둘의 관계가 변했다. 로빈슨은 방드르디와 형제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물구나무서기와 수영을 배웠다. 방드르디가 화살을 날리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방드르디는 “새나 토끼를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화살을 원한다기보다는 가능한 한 더 높이, 더 멀리, 그리고 더 오랫동안 날아가는 화살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로빈슨도 알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파도가 양떼구름처럼 하얗게 거품이 일던 어느날” 방드르디는 태양을 향해 똑바로 시위를 당겼다. 50㎝짜리 알바트로스 깃털을 꽂은 2m도 넘는 화살은 적어도 100m 되는 높이까지 날다가 사라졌다. 나중에 미셸 투르니에는 굳세게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인간이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는 이 장면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조화라고 표현했다. 현실주의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을까? 까다로운 문제일 것이다.
십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땐 상상력이 반짝거리는 기발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노동과 일이 놀이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둘 사이에 아무도 지배자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두려움과 막막함, 절망감 때문에 자기 세계를 유지하는 데만 관심 있던 로빈슨이 용기를 내서 방드르디에게 어떻게 사는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교황의 말은 고통받는 자를 향한 다른 태도, 조건 없이 타인을 끌어안는 태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했다면, <방드르디…>는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난 다른 관계, 다른 삶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했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른 두 대답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던 것이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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