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최재혁 옮김/한권의책 펴냄(2014) 지난 월요일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외출을 했다. 거미줄 같은 빛으로 휘감은 황금색의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올해 들어서 처음 만난 트리였다. 어머,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작게 만들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크리스마스트리 옆으로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애기봉 크리스마스트리라고 써 있었고 그 옆에는 ‘종북 좌파 척결’과 ‘세월호 특별법 반대’라는 글씨들이 보였다. 그 트리 또한 누군가 자기 나름의 열정을 불살랐다는 증거물일 것이다. 녹음기에서는 캐럴이 아니라 “종북 좌파 척결”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나는 오늘 또 한번 마음을 닫아거는구나!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한복판에 서서 슬픔을 느꼈다. 애기봉 트리이자 종북 좌파 척결 트리, 세월호 특별법 반대 트리 앞에서 이 거리는 다시 한번 낯설어졌다. 그 슬픔은 밤에 침대에 누워서 합리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비애를 느꼈다. 성공, 일, 그 무엇에도 적극적이 될 수 없게 하는 안개처럼 뿌연 비애. 이 도시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만드는 비애. 약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국화축제가 한창인 조계사에 들렀다. 국화향이 밤공기 속에 부드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국화로 만든 커다란 물음표도 있었다. ‘인간 본성은 뭘까?’를 꽃이 묻고 있었다. 광화문역에 갔다가 다시 조계사로 돌아갔다. 소잔등에 올라타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귀가하는 기우귀가란 조형물 밑에 앉아 있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평화롭게 피리 불면서 귀가하고 싶었다. 기우귀가 밑에 주저앉아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부제는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다)를 읽었다. 그날 나는 한가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흥미가 없을 줄로 알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지루해하는 것, 기분전환으로서 소비, 공허와 몰락의 느낌, 일의 노예가 된다는 것, 소외, 습관, 열정, 흥분, 쾌락, 생각한다는것, 이해한다는 것, 즐긴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 압도된다는 것, 자유 등 현대 소비사회 인간이 겪는 문제를 수없이 거론하고 검토하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파스칼의 기분전환(인간의 불행은 누구라도 방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생긴다. 인간은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기분전환할 대상을 찾는다)과 하이데거의 지루함의 2형식(인간은 지루함과 기분전환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을 산다)이었다. ‘어떻게 하든 지루해지고 마는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 것인가?’가 이 책의 질문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흥미로운 대답도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먼저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 해보려다가 좌절되어 공허해진 즉 지루해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지루함의 윤리학) 어떤 열정을 품고 살 것인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살 것인가? 물으면서 국화꽃 사이를 걸었다. 밤 국화 향기가 기분전환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기분전환은 기분전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의 이동과 새로운 세계의 창조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그날 밤 내게 필요했던 윤리학이었다. 정혜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