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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3 19:43 수정 : 2015.09.03 19:43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2015)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전 인생을 총정리하는 의미로 가장 아끼는 소설 세권을 묶어서 특별 소장판을 만들었는데, 이 삼부작의 타이틀은 ‘수상한 이인조’였다. 이때의 수상한 이인조란 어떤 것일까?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기까지 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듯도 한, 어쨌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인조’다. 수상한 이인조의 반쪽은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고 나머지 반쪽은 그가 영향을 받은 소중한 친구다. 오에 겐자부로는 인생의 시기마다 이인조를 이루었던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을 사는 태도, 소설의 작법을 만들고 자기 자신이 되어갔고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과 맺었던 인연이 바로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삼부작의 제목을 ‘수상한 이인조’로 한 것이다. ‘수상한 이인조’의 말미에 오에 겐자부로는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리틀 기딩’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엘리엇의 시에서 한 사람이 런던의 밤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이상한 얼굴을 본다.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이전에 알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린 얼굴 같기도 하다. 그 얼굴은 자기 인생에서 만났던 소중한 한 사람을 혹은 여러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멀어지는 밤의 어둠 속에서 고개 숙인 얼굴을 보았다./ 낯선 사람 보듯 날카롭게 쏘아보는 동안/ 불현듯 내가 아는 죽은 선생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잊어버렸으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하나의 얼굴인 동시에 수많은 얼굴이다./ 그리하여 나는 일인이역을 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상대방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 뭐야, 자네 이런 곳에 있었나?”

이 시에 이어서 오에겐자부로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렇다. 나는 이런 곳에 있다.’라는 마음을 담아 오랜 우정을 쌓아온 그리운 분들에게 (…) 이 책을 보냅니다.” 이 마지막 글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오래 전에 아주 좋아했으나 까맣게 잊고 지냈던 (인생의 한 시기 나의 수상한 2인조 반쪽이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고 물었다. 잘 지내라는 말에는 수많은 다른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잘 지내?” 이 말이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뭐야, 자네 이런 곳에 있었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에 겐자부로처럼 “그렇다. 나는 이런 곳에 있다”라고 대답할 때 그 곳은 어떤 곳일까? 과연 그리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담아서 이야기할 만한 곳일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지? 어떤 말에 귀 기울이고 무엇에 감탄하고 무엇에 환호성을 지르고 무엇에 기쁨을 느끼고 무엇에 고통을 느끼고 무엇에 기꺼이 코웃음을 날리지?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내가 있는 곳은 말이야. 가파른 오르막길이야. 암호랑이가 돌기둥 위에 있어. 고통을 변화의 기회로 삼을 줄 알고 두 다리로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내려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멋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지. 나도 그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저 높은 산꼭대기 까만 독수리 한 마리가 나는 곳까지. 이제 네 이야기를 들려줘. 너는 어떤 곳에 있니? 놀랍지 않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겠지? 놀랍지 않은 순간이 없는 것처럼 말이야. 자, 이제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사이에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들려줘.”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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