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작은 것들의 신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문학동네 펴냄(2016)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4월16일까지 한시적으로 방송되는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를 일주일에 한 번씩 제작하고 있다. 하루 녹음하고 이틀 편집하면서 유족들의 목소리를 스튜디오에서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나는 ‘피에타’를 듣는구나.’ 어머니 마리아가 고통받아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는 비통한 그림 피에타 말이다. 살아 있는 부모가 죽은 자식에 대해 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삶은 영원히 바뀌어버린다. 그러나 사랑은 절대로 잊히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 2년 전 4월16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의미는 시간과 함께 고스란히 겪게 된다. 그들이 보는 삶의 모든 ‘작은 것’에는 슬픔이 어린다. ‘눈, 비, 교복, 바다, 여름휴가, 가족모임, 벚꽃, 전화기를 든 사람들, 생일파티, 굿나잇 인사, 굿모닝 인사, 계란 프라이, 불 켜진 방, 뺨과 입술에 하는 뽀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 나도 유족들처럼 궁금하다. 힘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소중하게 가꿨던, 꿈과 삶의 의미를 줬던 작은 것들은 정말 4월16일 그 하루에 부서져 버린 것일까? 이 작은 것들은 대체 어떤 큰 것과 충돌한 것인가? 이 허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개개인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준비할 방법은 있는가?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왜 이런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유족들은 혼잣말처럼 읊조린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냥 학교에서 수학여행 간 건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뒤에 감추고 있게 마련이다.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가 쓴 <작은 것들의 신>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신과도 같았을 작은 사람의 삶이 먼저 파괴되고 이어서 나머지 가족들의 삶도 파괴된다. 늘 다른 곳을 보는 빛나는 눈을 가진 여인, 쌍둥이의 엄마 암무가 ‘사랑의 법칙’(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집안의 딸인 그녀가 공산주의자 불가촉천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남자 벨루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둘은 큰 것들(그가 공산주의자라는 것, 그가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오직 작은 것들(개미가 엉덩이를 물었어)만 이야기한다.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들이 있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준비를 해두는 게 상책이야’.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 말들을 바꾸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준비를 할 수 없다.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 일은 수년 전, 수십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큰 것과 작은 것이 부딪쳤을 때, 대가는 뒤에 남은 작은 사람들이 치른다. 침묵으로, 깊은 슬픔으로. 이제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남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세상이 정한 사랑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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