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안녕, 내일 또 만나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한겨레출판(2015) 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책이 있다. 내게는 <안녕, 내일 또 만나>가 그렇다. 열아홉살에 조선소에 취직해서 이십년 넘게 배를 만들다가 목숨을 끊은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 정정수씨에게는 아홉살, 일곱살, 다섯살 세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린이날 황금연휴 때 세 아이들과 텐트를 치고 집 근처 캠핑장에서 잠을 잤었다. 그것이 아이들과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이었다. 나는 세 아이를 자주 생각한다. 아이들 중 누군가는 텐트 안에서 아버지의 팔을 베고 잤을까? 5월 초순 거제의 바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버지를 잃고 지낸 시간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언젠가는 만나게 될까? 노조원으로 5년째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오던 유성기업 한광호씨는 지난 3월,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앞에서 농성 중인 그의 형을 생각한다. 그는 동생에 대해서 무엇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할까? 어느 형제 사이에나 있기 마련인 말다툼? 서로 나눠 쓰던 물건들? 못마땅해하던 습관들? 드물게 근심도 갈등도 없이 깨끗한 기쁨이 있던 순간들? 지난 4월에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네시의 궁전>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이 살아있을 때 영상을 받았다. 엉망진창으로 (하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공연을 하는 영상도 있었고 수련회 영상도 있었고 친구들과 “야, 우리 십년 뒤에는 뭐가 돼 있을까?” 묻고 떠드는 영상도 있었다. 그중에 볼 때마다,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영상이 있다. 어두운 복도에 소년들이 서 있다. 소년들은 뭔가 재미있어 죽겠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쉿, 조용히 해!” “폭죽은?” “폭죽은 애들이나 터뜨리는 거지.” 그리고 아파트의 벨을 누른다. 한 소년이 문을 열고 깜짝 놀란다. “생일 축하해!” 폭죽 대신 너무나 싱그러운 폭소가 터지고 소년들은 ‘쿨하게’ 금방 헤어진다. 행복한 한순간이었다. 그때 소년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나누던 말이 있다. “다음주에 만나.” 그러나 그 소년들 중 누구도 다음주에 만날 수가 없었다.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아주 특별한 감정인 상실감에 대한 소설이다. 두 소년이 공사가 진행 중인, 아직 미완성인 건물에서 날마다 함께 놀았다. 장차 창문이 될 정사각형 구멍으로 가로등을 바라보고 위험한 널빤지 위에서 균형을 잡기도 했었다. 그때는 두 소년 다 추락하지 않았었다. 하늘을 보고 이제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 싶으면 소년들은 “안녕, 내일 또 만나!”라고 말하고는 황혼 속을 걸어서 각자 길을 갔다. 어느 저녁 이런 평범한 작별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상실, 누군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 더 이상 “안녕! 내일 또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삶을 산다기보다는 견뎌내는 중인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질 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난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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