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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5 19:24 수정 : 2018.01.25 19:44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윤상인·박이진 옮김/문학과지성사(2012)

새해가 되어서 “올해는 책을 좀 읽어야겠어요!”라고 결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책이 한 사람에게 무엇인가’와 관련해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다.

오에는 어려서 ‘허클베리 핀’을 읽었다. 그는 1963년에 뇌에 커다란 혹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쓴 것이 <개인적 체험>이다. 아내는 아직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을 모른다. 처음 만난 의사는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이런 아이는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한다. 두번째 만난 의사에게 아이 아빠인 버드는 “수술을 한대도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의사는 “아기의 분유량을 조절해보죠. 분유 대신 설탕물을 줄 수도 있겠죠.” 이렇게 해서 버드는 아내 몰래 아이가 서서히 쇠락사했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뭐에 쫓기듯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버드는 ‘도망만 치는 남자이기를’ 그만두기로 한다. 소설은 버드가 아내 품에 안긴 아기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어디선가 이 소설의 결말을 이렇게 내게 된 것은 허클베리 핀의 영향이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허클베리 핀은 도망 노예 짐과 함께 미시시피강을 여행 중이다. 짐은 “헉, 너는 나의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하지만 허클베리 핀은 도망 노예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자진 신고하지 않는, 당대 최고의 엄청난 범법 행위를 한 것 때문에 가끔 노를 젓는 손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에 허클이 짐을 버리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한 말이 있다. 바로 “지옥은 내가 간다”이다. 오에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허클의 ‘지옥은 내가 간다’를 입속으로 되뇌면서 ‘더 힘든 쪽’을 선택해버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쭉 갔고 그것이 자기 인생의 방향성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는 진짜로 깜짝 놀랐었다. 왜냐하면 나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고 나도 ‘지옥은 내가 간다’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에 힘입어 선택을 하고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해봤었다. 읽기보다 중요한 것은 읽은 것과 삶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폴 발레리의 말을 빌리자면 ‘어려운 것은 발견을 자신과 합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에게는 읽기와 살기를 연결하는 근본이 되는 사건이었다. 그 뒤로 ‘지옥은 내가 간다’는 나에게도 선택의 순간에 떠올리는 중요한 문장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오에의 말을 인용하기 위해서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를 펼쳐봤는데 전에는 무심코 넘긴 다른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 체험>을 그렇게 끝내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아이와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가련한 바람을 배신해버린 작가라고 얼마나 후회했을까”라는 표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바로 그 이유로 책장이 닳도록 책을 읽는 밤을 갖는 것 같다. 나에게도 가련한 바람이 있다. 어떻게든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이런저런 문제들을 잘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 품었던 꿈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나의 얼굴에 인격을 주고 싶은 마음, 나의 일상에 조금 다른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 그 외에 더 많은 바람과 나도 모르는 의도들을 품고 책을 읽는 것 같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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