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에이미 립트롯 지음, 홍한별 옮김/클(2018) 스코틀랜드의 바람 부는 외로운 섬 오크니에서 태어나고 자란 에이미 립트롯은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그녀는 파티도 즐겼지만 최악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남자친구랑도 헤어졌다. 술을 진탕 마시고 강간당할 뻔한 위기를 넘긴 뒤 그녀는 스스로 알코올중독 지원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무사히 치료과정을 이수하고 술을 끊기는 끊었지만 여전히 술은 마시고 싶고 옛 남자친구는 그립고, 새 출발이란 것을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고 그 새 삶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는 실업수당으로 살았지만 직업지원센터는 그녀에게 빨리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 못해 왕립조류학회의 새 보호 프로젝트에 지원서를 냈고, 뜻밖에도 메추라기뜸부기 보존사업 일자리를 얻었다. 그녀의 글은 여기서부터 눈부시게 아름다워진다. 기대에 부풀기 때문이다. 그녀는 짝을 부르는 메추라기뜸부기 소리를 듣기를, 한번만 직접 메추라기뜸부기를 보기를 갈망한다. 메추라기뜸부기에 대한 온갖 자료를 조사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온통 메추라기뜸부기뿐이다. 그녀는 죽음과 멸종에 맞서 싸우는 새의 운명과 술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고 싶어하는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한다. 7주간의 계약이 끝났을 때 그녀는 서른두 마리의 메추라기뜸부기 소리를 들었고 단 한번, 그녀만의 유일한 뜸부기를 봤다. 몇달 동안 찾아 헤매던 것이 진짜로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생각 중 특히 내 마음을 끌었던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공허에 관한 것이다. 술 생각이 나는 순간은 공허 속에 있을 때다. 술에 대한 욕구를 떨쳐냈어도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를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빈자리를 커피, 글쓰기, 섹스, 사랑, 담배, 새옷, 온라인에서의 인정 등으로 절박하게 채워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치료법을 만든다. 오래 걷고 차가운 바다수영을 하고 옛날 일기를 순서대로 읽고 자유를 느끼고 만끽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빈 공간을 새로운 지식과 아름다운 순간으로 메우려 한다. 두 번째,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다. 그녀는 알코올 혹은 알코올의 부재가 영원히 자신을 정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코올 중독자 치유 모임에서 뭘 마셨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해방된 몸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다. 세 번째는 자유다. 그녀는 바닷가에서 스칸디나비아에서 떠내려 온 핀란드 보드카 병을 발견한다. 딱 한 샷 분량만큼 남아 있다. 마시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은 뒤에 찾은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맑은 눈, 별똥별, 자고 나면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상쾌해져서 맞는 아침, 취하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했을 때 느끼는 힘. 그녀는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역시 그녀가 술을 끊고 찾은 것들이 너무 좋았다. 특히 달무지개(밤에 보름달 빛이 만들어내는 무지개). 그리고 오로라의 찬란한 빛 때문에 새벽이 온 줄 알고 일찍 깨는 마도요와 기러기떼. 5월 첫 안개가 내릴 때 돌아오는 극제비 갈매기. 그녀의 빈자리가 힘과 아름다움, 자유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 자신은 과연 무엇을 이겨냈는지, 무엇으로 나를 정의하고 삶을 채워왔는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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