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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1 19:32 수정 : 2018.10.12 12:12

[책과 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캄포 산토
베(W.) 게(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문학동네(2018)

나는 어느날 세월호 고 최성호군의 아버지에게 평생 기억할 이야기 한가지를 듣게 된다. 세월호가 마침내 인양되던 날 아버지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세월호에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한 걸음 가고 그 다음날 한 걸음 더 가고 또 한 걸음 더 가고 매일 조금씩 더 전진해서 그가 세월호에 근접하는 데 한달이 걸렸다.

세월호에 가까이 가서도 차마 보지 못한 것은 4층 유리창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성호도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민간 잠수사가 사건 발생 나흘 후 망치로 4층의 유리창 중 한 장을 깼을 때 바다에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파문처럼 일었었다. 유리창은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

그런데 성호 아버지에게는 다른 유리창에 대한 기억도 있다. 2016년 1월 그는 뉴욕을 방문했다. 추모관 건립 문제로 고심하다가 뉴욕의 9·11 국립 뮤지엄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유리창이었다. 당시 쌍둥이 빌딩에는 4만3000여개의 유리창이 있었다. 그 중 단 한 장의 유리창만이 깨지지 않았다. 그 유리창이 뮤지엄 안에 있었다.

훗날 아버지는 말했다. 한 장의 유리창은 절망을, 다른 유리창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고. 그 뒤로 두 장의 유리창을 자주 생각하고 유리창을 보고 서 있는 성호 아버지를 생각하고 (이상하게도 그의 안경을 생각하고, 그의 눈을 생각하고…) 다른 재난 참사 가족들을 생각한다.

제발트가 쓴 <캄포 산토>에는 프랑스의 튈이란 도시에 사는 한 부인이 제발트에게 쓴 편지 한 통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도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어요.” 1944년 6월9일 튈, 마을에 사는 남자 전원이 나치 친위대에게 끌려갔다. 그중 아흔아홉명이 연령을 막론하고 가로등과 발코니 난간에 목매달려 살해당했다. 나머지는 강제 수용소 등으로 끌려갔고 혹사당하다 사망했다. 제발트는 묻고 있다. 문학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두루 조망하는 시선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만, 동시에 크나큰 불행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묵념을 통해 빛을 받고 있다. 글쓰기의 형식은 많고 많다. 하지만 오직 문학적인 글쓰기에서만이 사실을 등록하고 탐구하는 것을 넘어 재건하려는 노력이 관건으로 대두된다.”

제발트는 문학의 효용을 말하고 있지만 나는 크나큰 불행을 당한 사람-빛-‘재건’이란 단어 때문에 희망의 상징이 된 유리창을 다시 생각했다. 마음이 몹시 슬픈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재건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고통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고통이야말로 아들로부터 딸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에게 남겨진 것이다. 고통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고통을 통해 다른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연대에 대한 아주 아름답고 강한 정의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먼저 겪어야 했던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나중에 겪을 사람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것이 재난 참사 유가족들이 계속 말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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