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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1 06:00 수정 : 2019.05.31 20:04

[책과 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강도은 옮김/펄북스(2018)

늙어가는 것만큼이나 고독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 삶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질 만한 것도, 믿을 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는 이런 고독과는 정반대되는 책이다. 관심을 가질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갖가지 하늘, 갖가지 색, 갖가지 바람과 구름과 풍경으로 북적북적댄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자기 고장의 날씨를 사랑하고 매일매일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강우량이나 기압을 기록하고 자연의 경이에 반응하면서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꽉 차 있다.

존 던은 “하늘은 그런 별똥별들을 보여주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그게 무엇인지를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보여주지”라고 했고, 존 키츠는 ‘성 아그네스의 전야’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 매섭게 추운 날이었네/ 온몸이 깃털로 싸였어도 부엉이는 추웠다네/ 산토끼도 추위로 얼어붙은 풀밭을 절름거리며 가로질렀고/ 묵주를 돌리는 동안 기도하는 사람의 손가락은 굽었고(…)”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떠나자 한밤이 될 때까지 푹풍을 맞으며 밖에 앉아 있는다. 샬럿 브론테는 바람이 불면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자기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제인 에어>는 바람 속을 달린다. “바람이 그녀의 문제들을 공간을 가로질러 헤아릴 수 없는 하늘과 폭발하는 천둥 속으로 날려보내기 때문에.” <지킬과 하이드>의 하이드가 나타난 곳은 안개 자욱한 런던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치맛단을 걷어올리고 흙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며칠 동안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그 아침에는 차가운 안개가 끼어서 정오까지 개지 않았다. 이런 날씨의 변화는 세상과 우리를 충분히 재창조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재창조다. 오랫동안 날씨가 우리를 재창조해왔다. 우리는 수많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서로 다른 의성어를 발전시켜왔다. 토마스 하디의 주인공은 비가 내리는 밤에도 각자 다른 작물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구별하면서 길을 찾아갔다.

“숫숫 하며 빗물이 스며드는 소리가 들리면 그들은 지금 목초지를 지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 다음 후둑후둑 가볍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면 잎이 큰 뿌리 채소밭을 지금 지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철벅철벅 웅덩이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수확이 끝난 경작지 옆을 지나가는 중임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 귀에 들리는 빗소리와 일어났다가 잦아드는 낮은 바람소리에 따라 발걸음을 멈추면서 걸어갔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날씨를, 지구 온난화가 세상을 재창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특별히 아름다웠던 날로 기억하는 찬란한 날씨들은 기억 속에만 남을 수 있다. 이 책은 <노아의 홍수>라는 오페라 이야기로 끝난다. 오페라는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일들을 강조한다. 나는 파란 하늘과 산들바람과 무지개, 가을날의 서리, 수많은 동식물이 영원하길 바란다. 나는 자연의 은혜를 입고 싶다. 사랑할 것이 많은 채로 살고 싶다. 사랑할 만한 것을 많이 남겨놓고 싶다. 그 바람이 나 자신에게 ‘이렇게 살면 앞으로 어떤 일들을 이어지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질문이 계속계속 나를 공격하길 바란다. 시간이 아쉽다.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년에서 20년 남아 있다는 우울한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하루하루가 아깝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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