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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7 06:00 수정 : 2019.09.27 20:06

[책&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은행나무(2019)

며칠 전 출근하는데 깨끗한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들이 너울너울 날렸다. 나뭇잎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희로애락이 나뭇잎 한 장 밑에서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엔 나 말고, 나의 인간종족 말고 다른 것이 아주 많은데 그것은 아름답더라!는 그 평범한 사실이 새삼스러운 깨달음처럼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대체로 내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게 하나도 없을 때 그렇게 된다. 이렇게 내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 덕분에 마음속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는 것은 나에겐 아주 좋은 사건이다. 아름다운 걸 보면 자아가 싹 지워져 버린다. 자아가 지워진 상태로 지금 내 할 일을 잘 해내는 것, 이것이 평생 내가 할 일이다. 특히, 지금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덧없는 관심거리보다 오래 지속시키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나의 힘은 강해진다.

그렇지만 한 달 이상 생명이었던 것이 죽음으로 변신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마존과 인도네시아의 화재 이야기다. 인간이 지구를 이렇게 망가뜨려도 과연 미래란 게 올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에도 같은 질문이 나온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책 제목 오버스토리는 키가 큰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뜻하는 단어다. 이 아름다운 책에는 키 큰 나무 위를 올려다볼 때 우리가 발견하는 초록, 빛, 초록의 감정, 자아의 딱딱한 부분을 깨는 생명의 수런수런 두드림이 가득하다. 사실 우리는 현실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높은 곳, 상층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를 강력하게 살아 있게 만든다.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할 수는 있다. 벌목에 반대해 고공농성을 벌이던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내려온 다음 한 인물이 불에 타 죽게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흩어지지만 몇 년 뒤 그중 한 명이 검거되고 딱 한 명의 이름만 불면 사건을 종료시키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요약은 이 책을 소개하는 나쁜 방법이다. 리처드 파워스가 ‘나무’란 단어를 쓰면 그 단어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 같다. ‘우리가 세상에 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쓰면 그 단어들도 자라나 현실이 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식물학자 패트리샤는 ‘내일의 세계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일’이란 강연을 한다. 그녀는 브라질, 인도네시아의 숲들이 사라지는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증거를 기반으로, 나무의 관점에서 ‘내일의 세계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일’이 무엇인지 대답하려고 한다. 대답 전에 그녀가 하는 말이 있다. “문제는 세계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두 개의 정반대의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진짜 세계. 그리고 우리가 빠져나갈 수 없는 만들어진 세계.”

내일의 세계를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부와 지위를 내일도 내 가족이 지속 가능하게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위로 인간이 내일을 위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높고 빛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려는 마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서만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살고 먹고 가끔씩 자기 바깥으로 나간다. 기왕이면 더 밝고 더 따뜻한 쪽으로!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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