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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2 18:39 수정 : 2018.11.22 19:55

21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가짜뉴스 탐사보도 성과와 평가

21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위원장 신광영)는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정례회의를 열어 ‘가짜뉴스’ 보도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한겨레>는 지난 9월부터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탐사보도를 통해 가짜뉴스의 발원지와 유통 과정, 소비 행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왔다. 악의적이고 조작된 정보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는 전세계적 골칫거리다.

열린편집위원들은 가짜뉴스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낸 <한겨레> 보도의 성과를 평가하면서도, 개념의 모호함이 초래할 과잉 규제의 위험성을 고려한 엄밀한 접근이 아쉬웠다고 짚었다. 또 <한겨레> 독자들이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도록 팩트체크 서비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있었다.

이번 열린편집위원회에는 신광영 위원장(중앙대 교수·사회학), 김제선 위원(희망제작소 소장), 안지애 위원(<한겨레:온> 편집위원), 정민영 위원(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진민정 위원(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최서윤 위원(작가), 최선목 위원(한화그룹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사장), 김종구 편집인, 이재성 탐사에디터가 참석했다.

‘가짜뉴스 뿌리를 찾아서’ 보도
생산·유통지가 어딘지 밝혀내고
사회적 영향·대처방안 제시 인상적

신광영 위원장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차원에서 여러 나라 의회가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벌써 입법을 했고 유럽연합(EU)도 조치가 나올 것으로 본다. 한국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에 대응할 적절한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먼저 가짜뉴스 탐사보도를 지휘한 이재성 탐사에디터가 관련 쟁점이나 취재 과정 등을 설명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재성 탐사에디터 기사를 준비하면서 파장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커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차분히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직접 가짜뉴스 판별에 개입해 단죄하겠다고 나서면서 논의가 흐트러진 측면이 있다. 정부 견제 역할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 정부의 과잉 대응은 막았지만 후속보도를 준비하느라 직접 대안까지 모색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를 중심으로 차분하고 신중하게 대책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김제선 이번 <한겨레> 탐사보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촛불 이후에 세대 단절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과잉 허위 정보에 세뇌되는 그룹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런 정보를 체계적으로 생산·유통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밝혀냈다. 그들이 이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대처 방안까지 조명한 건 큰일을 한 거다.

최선목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보도는 가짜뉴스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허위 조작 정보는 보호받을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독자로서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와 사례 등을 제시한 기사는 가짜뉴스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 좋았다. 김이택 논설위원이 처벌보다 자율규제와 언론계의 자정 활동이 우선돼야 한다고 칼럼을 통해 지적했는데 이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최서윤 보도 뒤 가짜뉴스 온상의 움직임이 둔화됐다. 가짜뉴스가 활개 치는 건 생산자의 문제도 있지만 언론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 이제는 ‘진실의 시대가 아니라 믿음의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진짜뉴스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해서 이해한다. 듣고 싶은 정보만 듣는 소비자도 많고,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떨어지는 척박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언론의 역할은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것이다. 제 고민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느냐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가짜뉴스를 가려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개인적으로 (혐오 표현의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정치적 수사로 이용되는 개념과
분명하게 구분짓지 못해 아쉬워
해외사례도 더 정밀하게 다뤘어야

정민영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가짜뉴스 담론이 되레 정상적 논의를 가로막기도 한다. 정당 등이 자기들과 다른 주장을 너무 쉽게 가짜뉴스로 낙인찍고,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사 형식을 가장한 거짓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는데 한겨레 보도에선 이보다 폭넓게 바라보는 듯하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오용될 소지를 남기고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실제 잘못돼가는 징후가 계속 나온다. 최근 기사를 보니까 경찰이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이나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한 지원이 너무 많다는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했다. 큰 맥락에서 박근혜·이명박 정부가 유언비어를 엄단하고 처벌을 남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겨레가 가짜뉴스 보도를 주도했으니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고를 해야 한다.

진민정 공감한다. 가짜뉴스 자체보다 가짜뉴스 담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한다. 요즘엔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문제점 때문에 개인·사회·조직 또는 국가를 음해하기 위해 ‘고의로 생산된 거짓 정보’(disinformation)냐, ‘남을 해칠 의도 없이 생산된 거짓 정보’(misinformation)냐 등을 구분해 사용하자는 얘기도 많다. 개념 자체의 정의가 상당히 중요하다. 정치적 수사로 이용되는 가짜뉴스 개념을 언론이 그대로 사용하면 내 의견과 다른 모든 정보에 가짜뉴스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한겨레가 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 이번 기사에서 외국 사례를 조금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다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점을 에스더가 역이용해 한겨레 기사를 가짜뉴스로 공격하기도 했다.

신광영 위원장 독일의 입법 사례를 보면 가짜뉴스를 어떤 집단의 문제로 보기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처럼 이를 유통하는 소셜미디어에 엄한 책임을 묻는다. 법률을 위반한 내용이 게재되면 24시간 안에 삭제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거액의 벌금을 내게 한다.

진민정 정부가 국내 플랫폼은 과잉 규제하고 있는 반면 국외 플랫폼 규제는 꺼린다.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상황이라 플랫폼들이 과도한 처분을 피하려 손쉽게 검열할 가능성도 있다.

김제선 에스엔에스(SNS)에는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런 분위기가 허위정보 번식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한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유통 구조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 한겨레 보도로 악의적인 허위정보를 유통하는 구조가 드러났으니 이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선거철의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겨레가 일상적인 팩트체크 지면을 운영했으면 한다. 현재 정보가 유통되는 플랫폼이 자정 기능을 갖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겠지만, 에스더처럼 공식 미디어가 아닌 별도의 유통 구조를 가진 경우 누군가 사실 여부를 밝혀줘야 한다. 한겨레가 이런 장을 마련하면 반드시 기자가 아니어도 시민들이 검증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초기엔 직장인들이 언론 모니터링을 했다.

허위정보, SNS가 번식 토대
기성 언론에서 만들어 내기도
독자들 무엇이 사실인지 때로 혼돈
가짜뉴스 밝힐 조직 상설화 필요

진민정 팩트체크 서비스는 실제로 외국에서도 인기가 좋다. 요즘엔 팩트체크만 하는 저널리스트가 따로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누리집에 일반인 방문자도 많다. 우리 사회에 가짜뉴스가 심각한데 언론이 검증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 언론사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프랑스 사례를 보니 보통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독립적인 팩트체크 사이트를 운영하더라. 생각보다 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지만 검증이 저널리즘 영역이라는 점에서 한겨레도 전문인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김제선 또 하나 고민스러운 지점은 한국 사회에서 기성 언론이 교묘하게 허위정보를 양산하는 구조다. 명백한 허위사실을 진실처럼 써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일보>에서 통계가 생산된 맥락과 의미가 다른 경제지표를 편의대로 갖다 붙여 정부를 비판하다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가짜뉴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런 허위정보를 영향력 있는 언론이 양산하는 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안지애 2017년 10월17일에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를 만나 “영국에서 항공모함 보내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와이티엔>(YTN)이 낸 오보가 근거였다. 국내 언론사가 영국의 무가지를 베껴 썼던 것이다. 한국 대형 언론사까지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팩트체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언론사가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려면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들었다. 동시에 이런 뉴스의 대부분이 4분 안에 재생산되고 3분의 1가량이 그대로 복사돼 옮겨진다고 한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많은 기사가 빠르게 전파되다 보니 가짜뉴스를 모두 가려낼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긴 하지만 한겨레가 ‘가짜뉴스 전담팀’을 만들어 기여했으면 좋겠다.

정민영 뉴스 소비자 입장에선 어느 쪽 입장이 맞는지 분명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언론사 간 실명 비판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언론사 입장에선 부담되는 일이긴 하겠지만 다른 언론사 보도에서 사실관계가 명확히 다르다고 판단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종구 편집인 매우 좋은 제안이다. 사실 한겨레는 언론사 중 처음으로 ‘여론매체부’를 둬서 다른 언론을 비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급적 타사 보도를 비판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런 동지의식을 한겨레가 깼다.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간다’는 식으로 서로 너무 벌어진 느낌이 있다.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를 지적하려고 하면 매일 해도 끝이 없겠지만 팩트를 왜곡해 우리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갈 경우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최선목 지금은 <미디어오늘>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개별 매체가 서로 비판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만 한겨레가 가짜뉴스 탐사보도를 하면서 “허위정보를 유사 언론만 유포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언론이 없는 사건을 만든 게 한두번이 아니다. 기성 언론이라도 검증하지 않고 쓰면 그게 가짜뉴스다”라는 한 대학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이 얘기를 한겨레에도 해주고 싶다. 한겨레 역시 스스로 진영논리에 함몰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신광영 위원장 가짜뉴스 여부는 신문사의 성향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도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으로 이해한다.

정리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녹취 시민편집인실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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