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8기 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
8기 열린편집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편집인을 겸하는 열린편집위원회 위원장은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가 맡았다. 혐오 표현 문제를 다룬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이기도 한 홍 교수가 앞으로 1년 동안 열린편집위원회를 이끈다. 위원회는 세대별로 50대 4명, 40대 2명, 20대 1명이며 성별로는 남성 4명, 여성 3명으로 구성했다.
언론 보도의 젠더 문제를 톺아보고 있는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저널리즘 관행을 연구하는 박영흠 초빙교수(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경제인으로서 균형 있는 시각을 중시하는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 청년 주거 문제를 제기해온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대표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7기 위원회에 몸담았던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 김미경 한겨레온 편집위원도 활동을 이어간다.
8기 위원회의 첫 회의는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김종구 편집인, 김회승 총괄부국장이 함께했다.
홍성수 전통 미디어들이 위기를 겪는 때에 한겨레와 같은 신문사가 바뀌는 미디어환경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린편집위원회가 생산적인 토론을 해 <한겨레>와 언론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이번 회의는 전반적인 <한겨레> 보도와 편집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겠다.
김미경 먼저 두 달 전 기사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평소 <한겨레>가 기본에 충실한 기사를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양선아 기자의 ‘주 7일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 “일요일 하루라도 쉬고 싶어요”’(<한겨레> 9월20일치 1면) 기사에서 정답을 찾았다. 서울교육청에서 ‘학원 일요휴무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정보를 가지고 풀어나간 기사인데, 기자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이런 기사를 기다렸다. 자료조사와 취재가 잘되었다. 그런데 이후 아이들의 휴식권과 관련한 기사가 나올 때 디지털에서 기사들끼리 엮여 있지가 않더라. 온라인상에서 기사를 연관해 보여주는 노력을 더 기울였으면 좋겠다.
김제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겨레> 신문을 상대로 고소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당사자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어쨌든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와 관련해 언론 보도와 취재 관행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과거 <한겨레> 창간 당시 취재·보도 준칙과 현재 미디어 환경에 적절한 보도 준칙은 또 다를 수 있다. 현 환경에 맞는 보도 준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열띤 토론과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검찰 중심, 검찰 전지적 시점의 보도가 아니라 공판 중심 보도를 하는 데 <한겨레>가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 타 언론보다 <한겨레>가 상대적으로 익명 취재원에 기댄 보도 덜 하지만 익명 보도를 할 때는 자체 검증을 하고 그게 적절한 취재원인지 내부에서 스크린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겠다.
제목 위력 더 커진 온라인 시대
사실 따로 분석 따로 접근으론 한계
익명 취재원 더 치밀하게 검증하고
출입처 받아쓰기 과감하게 벗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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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렸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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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지금 언론이 처한 문제는 대중의 요구가 분명히 있는데 그 요구를 다 따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있다. 상황에 따라 대중의 요구를 받을지, 전통적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할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 수사 관련 보도는 대중의 요구를 다 따라갈 수 없었다. 원칙을 잘 세우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잠깐은 손해일지라도 멀게는 사회에 기여하고 언론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범죄 수사 관련 보도에 대해 <한겨레>에 이미 자세한 시행 세칙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원칙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그러다 보니 <한겨레>가 원칙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닌가 싶게 보였다. 보도 준칙에 문제가 생겼으니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원칙을 세울지 점검해보고, 세웠으면 어떻게 꾸준히 지킬지가 중요하다.
반면에 대중의 정당한 요구에 못 따라가는 면도 있다. 기자간담회처럼 공개된 자리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관계자’가 아니라 실명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 시민이 보았을 때는 ‘이건 또 흘려준 것이 아닌가?’라는 괜한 오해만 일으킬 뿐이고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것이다. 이런 지적은 언론의 관행이라 넘어가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박영흠 대중의 정당한 요구는 적극 받아들이고 아닌 경우 제 갈 길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대중이 한겨레신문사를 비롯한 언론사들을 ‘폐쇄적 기득권’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중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벽창호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겨레>가 앞장서서 그 인식을 깨야 할 필요가 있다.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면 왜 밝힐 수 없는지 이야기해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기존 관행상으로는 그럴 수가 없지만,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최근 <한겨레>의 오랜 독자 중 옛날 기자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 기자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 말에 100% 동의를 하지는 않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옛날 기자들이 촌지를 거부한다거나 내부고발을 한다거나 이런 면에서 기자 사회의 기존 관행을 깨는 작업을 했다는 걸 생각해서 하는 말일 수 있다고 본다. 출입처가 있는 기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대중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김미경 최근 한국방송사(KBS)가 출입처 제도를 없애고 검찰 받아쓰기는 안 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한겨레>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맞물려서 이야기되는 지금 <한겨레>가 입장을 표명해주었으면 좋았겠다.
홍성수 시민들이 언론을 보는 방식과 언론사가 기사를 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보도와 관련해서도 해당 기사는 나름대로 자기 완결성을 갖고 있다. 윤석열이 별장에 갔다는 이야기가 아닌, 수사 당시 그의 이름이 나왔는데도 수사가 더 진행되지 않았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기사가 시민들에게 비친 방식이 굉장히 중대한 무언가가 밝혀진 것처럼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야 ‘기사 내용을 보면 다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기사의 제목과 소제목만 보고도 기사 전체를 파악하는 소비 행태는 언론이 적응해나가야 한다.
종이신문을 보면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다. 어떤 기사는 건조하게 사실만 보도하고, 또 다른 기사는 분석해주는 방식으로 편집 방향이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많은 기사 중 하나만을 보는데, 그 기사만 보면 이상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 시민들에게 종이신문을 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니, 온라인에서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조국 이후 기획' 시의적절했지만
현장 더 밀착했다면 공감 컸을 것
탐사·심층 보도 시간 흘러도 의미
청년·약자 관심 쏟고 대안도 함께
박영흠 ‘조국, 그 이후’ 기획연재 기사가 인상 깊었다. 한국 사회에서 매번 뜨겁고 치열하게 싸운 다음에 아무것도 배우거나 달라지는 것 없이 넘어가는 일이 반복됐는데, 조국 장관 관련 이슈에서도 양편으로 갈라져 싸우고 난 뒤 학습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를 시의적절하게 짚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기사 내용이 너무 아카데믹한 느낌이 강했다. 좀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 현장 중심으로 했다면 좋았겠다.
김제선 방위비 협상에 대해 <한겨레>가 당당하게 기사를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부 언론사들은 미국이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입장만 전달하는 형식에 그친다면, <한겨레>는 우리나라 입장을 잘 짚어주고 있어 좋다. 반면 <한겨레>가 잘못 썼다고 생각하는 기사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예산에 배정하고도 쓰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잉여금 문제를 기사로 쓰고 사설로까지 지적했는데 그게 왜 남았는가, 왜 못 썼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았다. 지자체의 제대로 된 예산집행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중앙정부가 각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짚어줬어야 한다. 민간단체에서 낸 보고서 하나에 기획재정부(기재부) 장관이 움직인다는 것은 재정 분권을 헐뜯는 행위다. 입법 상황, 예산 편성 심의 과정 등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이 중앙 기득권 중심으로 이뤄지고, 예산도 기재부 관료들의 의지가 훨씬 더 반영되고 있어 심층보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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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렸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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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흠 민주개혁적인 정권, 그리고 그 정권을 지지하는 시민들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한겨레의 고민이 느껴진다.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 기사가 그렇게 보였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으니 중립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어떤 목소리도 느껴지지 않아 무색무취했다. 혹시 독자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강준만 교수가 진보의 틀을 바꿔야 한다며 이제 ‘1 대 99’가 아니라 ‘20 대 80’의 구도라고 했다. 방향에 동의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다. ‘20’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양보를 얻어내는 일은 ‘1 대 99’의 구조보다 더 어려운 숙제다. 더군다나 <한겨레>로서는 핵심 독자층이 ‘20’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총론이 아닌 구체적인 내용, 디테일에서 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준동 신혼 때 집 앞에서 <한겨레> 신문을 집어들 때면 애틋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처럼 <한겨레>가 미래지향적인 신문으로 감동을 줬으면 좋겠다. 창업, 스타트업, 젊은 비즈니스맨들을 조명해 청년지향적이고 밝게 나간다면 경제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대립적이고 비판하는 것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카타르시스를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해 신문 활자체를 바꿔줬으면 좋겠다.
최지희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현장에서 여러 <한겨레> 기자를 만난다.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같은 <한겨레> 기자라도 매우 다양하구나 하고 느끼곤 한다. 최근 부양 의무제의 악습이 주거급여에서 폐지된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20대 청년들은 배제됐다. <한겨레>가 이 지점을 잘 짚어줬는데 앞으로도 끊임없이 청년, 약자, 부동산 등에 대해 시각이 살아 있는 보도를 기대한다.
홍성수 좋게 평가되는 기사의 대부분은 속보가 아니라 탐사기획 보도다. <한겨레>가 지향할 바를 보여준다. <한겨레>는 이미 올해 초 살처분 트라우마 탐사 보도를 했다. 최근 돼지열병이 났을 때 그 기사를 공유했다. 시간이 지나도 의미 있는 심층 보도, 어떤 경쟁 언론도 쉽게 할 수 없는 보도를 해야 한다.
김미경 질기게 갔으면 좋겠다. 정환봉 기자가 멜론 사태를 단독 보도하고 꾸준히 보도한 것이 매우 좋았다. 검찰개혁도 그동안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정리가 안 되니 차분하게 정리하는 기획이 있으면 좋겠다. 외국과도 대체 무슨 차이 있는지, 빠른 뉴스보다 수준 있는 뉴스를 제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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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열린 8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촉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회승 한겨레신문 편집국 총괄부국장, 김종구 편집인, 박영흠 협성대 초빙교수, 김미경 한겨레온 편집위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대표, 임지선 소통에디터,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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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흠 한국의 검찰만큼 세계적으로 무소불위의 조직은 없다. 검찰개혁은 사회적 의미가 크다. 피의사실 공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외국 기준을 그대로 수입할 수도 없다. 적폐 수사, 사법농단 수사 등이 벌어질 때 법원 판결까지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의구심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견제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로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겨레>가 앞장서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김제선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다. 앞으로 열린편집위원회가 좋은 기사 추천하고 우수한 기자 선정하는 작업도 하자.
정리 임지선 소통데스크
sun21@hani.co.kr, 녹취 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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