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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3 19:48 수정 : 2015.11.30 11:14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선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영화 사상 최고의 나쁜 놈 중 하나인 티(T)-1000도 돌아왔다. 이병헌이 연기한 새로운 버전의 T-1000.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지난 1984년 “아일 비 백”이라는 5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유행어를 전세계에 살포한 뒤로 현재 2015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차례나 더 ‘백’ 하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과연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 없음을 명명백백히 입증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 하지만 그 ‘백’이 관객들의 기대지심을 충족시킨 것은 1991년 2편까지의 일로서, 영화 종료와 동시에 그냥 못 본 것으로 해두기로 굳은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던 3편,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굳이 애써 기억 되살려 회상하고 싶진 않았던 4편에 이어, 결국 5편이 또다시 ‘백’ 하여 대략 두려움이 8 기대가 2 정도의 비율로 배합된 싱숭생숭한 심정을 우리에게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번 5편은 ① 지난 4편에서 한차례 쉬어갔던 아널드 형님(이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 연로하셨다만)이 다시 ‘백’ 한 것과 ② 바둑알처럼 매끈한 근육 및 얼굴을 가진 1984년 당시의 아널드 형님도 함께 ‘백’ 한 것 외에도 ③ 많은 분들께서 영화 사상 최고의 나쁜 놈으로 꼽기 주저하지 않을 티(T)-1000이 ‘백’ 한데다가, 그것을 다름 아닌 한국 배우 이병헌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한국 관객들의 호기심 및 의리지심을 자극하고 있다. 하여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대한 감별은 ③번 항목, 즉 이병헌 버전의 T-1000에 대한 감별로 시작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예고편을 보신 분들께서는 익히 아시겠지만, 총격 입은 눈두덩의 순간복원부터 양팔의 액션장비화까지 이번 5편의 T-1000은 2편의 T-1000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유가 있다. 이번 5편은 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중추인 1편과 2편의 핵심 부품만을 추출해낸 뒤 ② 새 캐스팅으로 그것을 다시 도금하여 ③ 새로운 이야기에 그대로 짜깁기해 넣는 ‘부품 재활용’을 핵심 정책으로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T-1000 또한 이 재활용 부품 중 하나인바, 이병헌판 T-1000은 로버트 패트릭 판 T-1000과 거의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영화에 이병헌이 캐스팅된 것은,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영화 시장의 질과 규모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관객들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극장에 왕림시키기 위한 포석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인데, 단연 ‘올해의 영화 재앙 톱 5’에 자리매김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이미 이러한 경우를 겪었던 우리 한국 관객들로서는 이 포석에 또 한번 넘어가줄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요구된다 하겠다. 특히나 이병헌판 T-1000은 영화 초반 3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조기 격퇴당한 뒤 끝까지 다시는 ‘백’ 하지 않는 마당에 말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T-1000과 관련하여 한 가지 참신한 점이 있긴 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T-1000이 주인공들(세라 코너와 T-800, 즉 아널드)에 의해 격퇴되는 과정인데, 다행히도 5편은 2편의 용광로를 재활용하는 대신 나름의 새로운 박멸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T-1000의 재등장을 전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이미 T-1000은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액체금속 덩어리로 떡 되어 부글거림으로써 이병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말아 마지막까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 이쯤이면 위 ②번 항목, 즉 1편 당시의 T-800, 즉 팽팽한 아널드 역시 5편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에 힘입어 팽팽하게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1편의 젊은 아널드는 영화 초반에 현재의 연로하신 아널드와 잠시 육탄 액션을 벌여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전신화상을 입음으로써 그리도 팽팽하던 외피를 흔적도 없이 홀랑 태워먹는다.

하여 주최 측에서는 그냥 금속 뼈대만 남은 T-800만 등장시킬 알리바이를 확보함으로써 젊은 아널드의 얼굴을 계속 재생해야 하는 고충을 간편하게 털어버릴 수 있었다만, 관객 입장에서는 예고편에서 본 것 이외에는 그다지 더 본 것 없다는 느낌, 즉 낚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5편 자체가 일종의 거대 낚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전반부에 1편, 2편의 추억 돋게 하는 장면들을 집중 포진시켜 원조 <터미네이터> 팬들의 관심을 확보한 뒤, 그 재생 부품들을 전부 소진해버린 뒤부터는 3편의 악몽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5편은 결국 ‘최첨단 나노 테크놀로지 터미네이터’를 등장시킴으로써 팬들을 본격 도탄에 빠뜨린다. 전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최악인 3편, 그중에서도 최고의 본의 아닌 코미디였던 ‘거대 자석의 내습’ 콘셉트를 부활시킴으로써 그 진정한 혈통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대한 감별에 갈음한다.

좋은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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