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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7 19:15 수정 : 2015.11.30 11:14

영화 <다크 플레이스>는 샬리즈 시어런(사진), 니컬러스 홀트, 클로이 모레츠의 세 배우가 동반 출연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다크 플레이스

<나를 찾아줘>의 ‘충격 반전’, 그러니까(잠깐. <나를 찾아줘>를 안 보신 독자께서는 곧장 아래 ★로) 여주인공의 갑작스런 실종은 알고 보니 치밀무쌍한 계획하에 실행된 자작극이었더라, 하는 설정은 충격이었던가? 글쎄, 사실 이 정도 급의 반전은 대개의 관객들이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설정인바, 이를 ‘안 가르쳐 주지’라며 꼭꼭 꿍쳐뒀다가 영화 막판에 몰아치는 편집과 숨넘어가는 오케스트라 선율 대동한 채 ‘깜짝 놀랐지!’라는 듯 터뜨리는 등의 촌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찾아줘>는 기초 상도의에 충실한 예절 바른 영화였다 할 것이다.

그리고 ★ <다크 플레이스>. 이 영화는 ① <나를 찾아줘> 작가의 또다른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과 ② 샬리즈 시어런, 니컬러스 홀트(잘 자라서 나타난 아동 배우의 대표주자), 클로이 모레츠(계속해서 잘 자라고 있던 아동 배우의 대표주자) 이 세 배우가 동반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 이 두 포인트로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바, 이를 중심으로 금주의 감별을 시행한다.

우선 ②번. 그야말로 다크한 플레이스를 배경으로 다크한 의상까지 입은 채 복중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샬리즈 시어런을 앞세운 포스터만으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단연 샬리즈 시어런의 영화다. 사실 <어바웃 어 보이>의 그 사랑스럽고도 정감어린 왕따 소년에 대한 추억과 <킥애스>의 그 기발하고도 카리스마 드높은 킬러 여아에 대한 추억으로 니컬러스 홀트와 클로이 모레츠, 이 두 배우에게 마음 두실 관객들 많을 줄로 아는데, 이 영화에서의 시어런 : 홀트 : 모레츠의 극중 비중은 대략 6:1:3 정도라는 것을 모쪼록 유념하시기 바란다.

특히 최근 각급 누님 관객들의 각별한 총애를 득하고 있는 배우인 니컬러스 홀트가 연기하는 ‘아마추어 사건수사 동호회’의 회원 ‘라일’ 캐릭터는 그닥 결정적인 극중 비중을 차지하지도, 인상적인 개성을 보여주지도 못해 못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뭐, 이제껏 많은 미국산 영화들이 즐겨 써먹어 온 대표적인 낚시 기법인 ‘우정출연 배우 성명 주연배우처럼 대문짝만하게 써넣기’로 단련된 맷집 덕분인지 이 정도는 넉넉하게 느껴진다.

반면 클로이 모레츠는 상당한 극중 비중 및 출연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가뜩이나 연령대와는 무관하게 할 거 다 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경력을, 다 자란 여성 된 현재, 뻘 만난 장어처럼 활짝 꽃피우고 있어 소정의 기대에 십분 부응하고 있다. 단, ‘순수-퇴폐-발칙함의 황금배합’이라는 그녀 특유의 캐릭터 선택이 자칫 매너리즘으로 굳어져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오지랖성 우려는 남는다.

뭐, 하긴, 배우들의 출연 비중이야 어찌 됐든 영화만 흥미진진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 원작”이라는 영화의 헤드카피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핵심은 단연 ①번 항목인 것이다.

영화 주최 측은 이에 대해 일말의 이의도 달지 않은 채 정말이지 다소곳하게 머리 조아리고 있다. 즉, 이 영화는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목표에 충실 또 충실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다. 손전등 꺼내들어 스크린 안에 던져주고 싶을 정도로 다크한 조명을 즐겨 사용했다는 것 외엔 눈에 띄는 영화적 참신함을 거의 찾기 어려운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노라면 ‘대체 누가 진범이길래’ 외엔 거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바, 그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핵심 사건인 ‘한밤중의 외딴 시골집에서 일어난 일가족 몰살사건’의 진상에 대해 시종 ‘안 가르쳐 주지’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로 인해 관람의 초점은 미스터리의 해답을 알아내는 데만 집중되며, 따라서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린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영화 막판에 밝혀지는 미스터리의 실체다. <다크 플레이스>는 너무 안 충격적이어서 충격적이었던 수많은 함량 미달 반전을 보여준 자칭 반전무비들이 그랬듯, 영화 내내 관객을 약올림으로써 ‘도대체 뭐길래’라는 궁금증을 키울 대로 키워놓은 뒤, 스스로 파들어간 깊디깊은 무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영화 중반께, 더 늦기 전에 ‘충격적 반전’ 카드를 다소곳이 뒤집어 보임으로써 막판 반전 대신 또다른 뭔가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었던 <나를 찾아줘>의 현명함과 극명히 대조되며 그 다크함을 더하고 있다.

뭐, 이 ‘막판 반전’은 관객이 느껴줬으면 하는 정서적 감흥을 극대화시키려는 나름의 포석이었겠으나, 정작 막판에 가면 그런 거 느낄 여지는 사라지고 없다. 그놈의 따분한 ‘안 가르쳐 주지’에 지친 나머지.

한동원 영화평론가
아니 그럼, 패 다 보여주면서 어떻게 고스톱을 치란 거야, 라 항변하실 분들께 이 영화(그리고 원작소설)의 시조새 격이라 할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읽어보시길 감히 권해드리는 것으로 금주의 감별에 갈음한다.

모쪼록 좋은 영화들과 함께 삼복더위 잘 넘기시길.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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