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청년세대의 취업분투기를 표방하는 듯하다가 연예계 비리 폭로담 안에서 표류하고 말았다. 반짝반짝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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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한번 들으면 좀체 뇌리에서 걷어낼 수 없는 제목뿐 아니라 “니 생각, 니 주장, 니 느낌, 다 필요 없어!!”라든가 “수습사원도 사표를 써야 하나요?” 등등의 심금 깊숙이 울리는 카피를 통해 <미생>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적절히 짬뽕져 어우러지는 청춘 코미디일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더구나 이 영화는 순진무구 신입사원 ‘도라희’ 역에 박보영, 세파에 너덜너덜해진 직장상사 ‘하 부장’ 역 정재영이라는 신뢰감 가는 두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더욱 강하게 관람 욕구를 상승시키고 있다. 하여 이 영화의 감별 포인트는 결국 ① 신입과 기성 직장인들의 애로와 애환을 얼마나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② 그를 통해 얼마나 심금 울리는 코믹효과를 득하고 있는가, 그리고 더불어 ③ 얼마나 코끝 찡하게 사회생활에 지친 우리네 마음을 울려줄 것인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포인트에 대한 본격 감별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마주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영화의 제목과 카피와 예고편 등등에서 천명되고 있는 ‘사회 또는 회사 생활의 애환’이라는 테마는 오로지 영화의 5분의 1쯤에 해당되는 앞부분(즉 주인공의 첫 출근과 첫 임무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깨지는 도입부)까지만 견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어라. 영화 전체가 아니라 5분의 1까지만?
그렇다면 대체 나머지 5분의 4는 뭘로 채워져 있단 말인가.
그 나머지는 요컨대 연예계 비리 추적 및 폭로극이다. 주인공 ‘도라희’가 인턴으로 출근하게 된 회사란 우리가 보통 회사라는 단어에서 떠올리게 되는 그런 카인드 오브 ‘평범한’ 회사가 아닌 스포츠 신문사, 즉 언론사이고 ‘하 부장’은 그 언론사의 베테랑 연예부 부장이다. ‘도라희’는 영화 초반의 수습사원적 우여곡절을 거친 뒤 곧바로 이 연예계 비리를 추적하는 활약상에 돌입하고, 각종 난관 및 외압을 뚫으며 결국 거대 연예기획사의 비리의 심장부를 파고든다.
이렇게 ‘청년세대의 애환’에서 ‘저널리즘의 애환’으로 이동된 영화의 무게중심은 끝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은 주인공을 핍박하는 직장상사 ‘하 부장’을 악의 축(을 가장한 인생 스승)으로 설정하는 대신, 연예기획사 대표 ‘장 대표’(진경)를 악의 축으로 설정하면서 발생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즉, 서로 치고받고 물고 물리고 티격태격하며 (정해진 수순대로) 점점 서로 마음을 열며 이해해갈 순진 신입사원과 강적 직장상사 앞에, 난데없이 ‘장 대표’라는 공동의 적이 던져짐으로써 두 사람은 공동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고, 결국 ‘좌충우돌 청춘 취업담’ 같은 콘셉트는 물 건너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뭐, 그럼 좀 어때.
영화가 반드시 제목 및 광고 등과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겉포장과 사뭇 다른 내용물이 들었다 해도, 그것이 맛 좋고 영양가 높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감별 포인트를 새로이 ①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연예계 비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② 그것을 파헤치고 폭로하기 위한 주인공의 저널리스트적 분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그리고 ③ 그 결말이 얼마나 속시원하거나 감동적인가로 긴급 수정하기에 이른다.
일단 영화의 핵심 사건으로 제공되고 있는 연예기획사 대표의 ‘사악함’과 ‘음모’는 물론 그 자체로만 보면 꽤 사악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악함은 관객의 분노지심에 불을 붙이지는 못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함유) 음모의 핵심 희생양인 ‘대한민국 톱스타 우지한’ 캐릭터와 주인공(그리고 관객) 간의 정서적 교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지한이 겪는 각종 억울하고도 부당한 사연들은 그저 스쳐지나는 배경화면처럼 브리핑됨으로써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을 위한 충분한 알리바이를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리사욕 위해 우지한을 옭아맨 ‘장 대표’의 사악함과, 그녀를 응징하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 역시 그다지 큰 감흥을 안기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하여 ‘바로 지금!’이라고 붉은 매직으로 밑줄치듯 감동과 카타르시스 향해 너울져 휘몰아치는 결말부는 결국, 승객들이 미처 탑승하지도 못했는데 목적지 향해 질주해나가는 버스의 형국을 연출하고 만다. 못내 안타깝게도.
여기서 대체 왜! 라고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다.
대체 왜 영화는 ‘고군분투 청년취업기’라는 콘셉트를 견지하며 나름 아기자기하게 풀어가던 초반부의 쫀득한 분위기를 저버린 채, 그닥 흥미롭지도 않고 별다른 울림도 없는 연예계 비리 폭로담을 향해 하염없이 표류해 가야만 했던가. 더구나 요즘처럼 각종 영화들이 정치, 재벌, 법조계 등 이 사회의 ‘중추’의 맨살을 거침없이 헤집고 있는 시국에서.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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