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18 20:01
수정 : 2015.12.20 10:53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크리스마스의 블록버스터들
<히말라야>, <대호>, 그리고 <스타워즈> 제7편 등, 매년 안 그런 해가 없긴 했다만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의 일대격돌에는 거의 비장한 분위기까지 감돈다. 하여 감별사 된 몸으로서 이 일대격돌을 수수방관할 순 없는 일. 오늘은 금주 개봉 영화들의 종합감별을 시행한다.
단,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스타워즈> 7편은 주최 측에서 펼치고 있는 철두철미한 신비주의 정책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금번 감별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뭐, 큰 지장은 없겠다. 어차피 <스타워즈>는 볼 사람은 누가 뭐래도 보고, 그 반대 또한 성립하는 그런 카인드오브 영화이므로.
①<히말라야>: 이 영화는 <해운대>-<댄싱퀸>-<국제시장>으로 가히 12세 이상 관람가의 제국을 구가하고 있는 제이케이(JK)필름이 황정민 주연으로 제작한 또 하나의 12세 이상 영화라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2004년 개봉했던 <빙우> 이후 몇몇 다큐를 제외하고는 전무했던 국산 산악영화, 그것도 장편 극영화라는 점에서 단연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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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극장가에서 대작들이 격돌한다. <히말라야>는 코믹 장면의 타율이 낮다. 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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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각적인 면에서 <히말라야>는 충분히 훌륭하다. 히말라야, 몽블랑, 북한산 등등에서의 ‘몸 던진’ 로케이션은 현장감이 생생히 살아 있을뿐더러 낙빙, 눈사태 등 사고 장면에서의 긴박감이나 기술적 완성도는 실로 드높다. 물론 컴퓨터그래픽(CG)의 향취 물씬 풍겨오는 장면들도 가끔 눈에 띄긴 한다만 그런 사소한 걸 걸고넘어지면 정말이지 반칙이고.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처럼 기술적인 부분에 있지 않다. ‘조난당한 동료 산악인들의 시신을 거두기 위한 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조난과 그에 따른 비극적 상황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한데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연말연시 시즌을 겨냥한 12세 이상 감동 대작. 따라서 이 무거운 분위기는 반드시 중화되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 조난 이전의 전반부에는 코믹 장면들이 대거 투입된다.
하지만 찬스마다 어김없이 추구되는 코믹 장면들의 타율은, 심히 안타깝게도 대단히 저조하다. 여기에다 각 장면에서 느낄 감정을 쉬지 않고 설명하는 친절본위적 음악, 그리고 ‘전반 코미디 후반 눈물’이라는 공식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후반부의 4중 눈물압출 공정 등등의 과도한 인공첨가물들이 가세하며, 원재료인 실화가 가진 맛은 상당 부분 상쇄된다.
아아, 아쉽다. 때론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무(無)요리의 요리가 최고의 요리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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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호랑이의 지나친 의인화가 아쉽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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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대호>: 이 영화에는 최민식이라는 ‘믿고 찾는’ 배우의 존재와 더불어 박훈정 각본·감독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랑이가 또 하나의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점과, 그 호랑이가 일제에 의해 말살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설정되어 있음으로 인해 (<명량>에 의해 그 강력한 관객흡수력이 증명된) 역사 한풀이적 기능성 또한 갖추고 있다는 점은 <대호>의 무시무시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미 많은 곳에서 거론되고 있다시피 호랑이 ‘산군’의 기술적 완성도는 드높다. 그 카리스마는 물론이려니와. 더불어 일제시대의 지리산촌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진 속에서 그대로 끌고 나온 듯한 미술 또한 ‘현재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듯 리얼 그 자체다. 여기에 각기 저마다의 신을 내림받은 듯한 배우들의 연기가 가세한다. 최민식뿐이 아니다. 주인공 ‘천만덕’의 아들 ‘석이’ 역의 성유빈의 연기는 단연 올해의 끝내기안타라 할 만하고, 무엇보다도 광기로 치달아 나가는 ‘구포수’ 역의 정만식의 연기는 주목받아 마땅하다. 날뛰는 광기들을 질펀한 땅바닥에 든든히 묶어두는 김상호의 연기는 새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이라는 핵심을 조각하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단순하지만 단호하고, 투박한 듯 섬세한 터치로 ‘저들’과 ‘우리’, 그리고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을 말한다. 우리가 언제나 듣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블랙홀 너머 외계행성을 통해서든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통해서든.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간을 이야기하기 위해 굳이 호랑이까지 인간화시킬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점점 가속화되던 호랑이 ‘산군’의 지나친 인간화는, 그 배경에 어김없이 깔리던 <가위손> 풍의 음악과 더불어 이 영화의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③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있다. 세 편의 거대 영화들의 격돌에 묻혀 그 존재를 거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만, 그렇게 놓쳐버리기엔 대단히 아까운 영화다. 특히나 화려무쌍한 벽난로보다는 한 주머니 속 두 손 같은 온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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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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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랄 줄거리도 압도적 비주얼도 없이 잔물결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이 오즈 야스지로 풍의 귀여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값어치를 드러낸다. 천만 고지 향한 생사결단의 격돌이 지배하는 시끌벅적한 검투장을 벗어나, 조용하고 정감 어린 영화 골목을 거닐고 싶은 모든 관객들에게. 눈처럼 소리 없이.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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