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 쇼트>는 도대체 왜 서브프라임모기지 같은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백주대낮에 벌어졌는지 본격적으로 파고들기에는 시간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이 감별사 같은 민간인들을 위한 교육 효과를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삼는 영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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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빅 쇼트
고 고우영 화백은 딱딱한 생각이나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도구라는 의미로 ‘만화는 당의정(쓴 약을 사탕옷으로 덮은 알약)이다’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만화’를 ‘영화’로 바꾸면 <빅 쇼트>야말로 이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일 것이다.
<빅 쇼트>의 ‘쓴 약’이란 물론 미국 및 전세계를 도탄에 빠뜨렸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내막 및 진상이고, ‘사탕옷’이란 각종 뻑뻑뻣뻣한 금융용어들 뒤에 숨어 있는 업자들의 설레발과 꼼수들의 진짜 의미를 관객 여러분께서 쉽고 빠르게 섭취 및 흡수할 수 있도록 취해진 일련의 조처들을 일컬음이다.
이 ‘당의정’적 조처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캐스팅이다. 크리스천 베일을 위시하여 스티브 커렐,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브래드 핏까지 포진시킨 화려한 캐스팅, 그리고 이를 십분 강조 및 과시하고 있는 포스터 등등은 오오, <오션스 11>의 금융 버전이 나왔는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만,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드리지만 <빅 쇼트>는 ‘대체 어떻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백주대낮에 벌어질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는 있지만 그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에는 시간도 없고 왠지 귀찮기도 하고 골치도 아플 것 같아서 차마 손대지 못하는, 이 감별사 같은 수많은 민간인들을 위한 교육 효과를 가장 중요한 기능 및 목적으로 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여 <빅 쇼트>의 화려한 캐스팅은 <어벤져스>풍의 모두 모여 판 키워 크게 먹자는 캐스팅보다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한 배우들이 자신을 영화에 헌납하는 캐스팅, 말하자면 ‘십시일반 캐스팅’에 훨씬 가깝다 할 것이다. 뭐, 그렇다고 이 배우들이 출연료 땡전 한 푼 안 받고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이런 화려한 캐스팅은 <빅 쇼트>의 ‘당의정’적 조처의 시작일 뿐이다. 연출에 있어서도 영화는 교육적 기능성을 전혀 감출 마음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팝업창형 해설’(물론 이는 감별사가 즉석 제작한 용어)이다. 뭐냐면 ① 뭔가 대단히 중요한, 하지만 대사나 사건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딱딱 복잡한 용어나 상황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② 갑자기 배우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 여기에 대해선 ×× 사시는 △△씨가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운운하는 대사를 날리고 ③ 그 ‘×× 사시는 △△씨’가 실제로 등장하여 누구나 알 수 있는 생활밀착적 비유를 통해 그 용어(또는 상황)를 설명한다. ④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 이 ‘×× 사시는 △△씨’들은, 그 면면에 있어서도 거품목욕 미녀(그녀는 다름 아닌, 이 영화의 형님 격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출연했던 마고 로비다!), 셰프, 카지노 손님 등으로서 ‘당의정’적 기능성에 매우 충실하다.
이뿐이 아니다. 각종 용어 등장시마다 자막은 물론, 배우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 내용 해설하는 이비에스(EBS)스런 연출도 상당히 빈번하게 등장한다(이런 기법들 자체는 물론 <애니 홀>을 위시하여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까지 이르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익히 사용된 것임은 굳이 말할 것도 없겠다).
이러한 주최 측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우리 민간인 관객들은 영화의 매우 빠른 흐름과 쏟아져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름은 고사하고 얼굴마저 익히기 벅차다) 그리고 각종 우주어들(주택저당채권, 공매도, 트랑슈, 신용부도스와프, 에이비엑스(ABX)지수, 부채담보부증권, 즉 시디오(CDO), 아이에스디에이(ISDA) 등등)이 난무하는 이 가혹한 관람환경에서도 계속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흡사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아니 그렇다면, 그 알맹이만 놓고 말하면 이비에스 스페셜 다큐의 극영화 버전인 듯한 이 영화를 굳이 관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겨우 유명 배우 네 명 떼출연한 거 보려고? 라고 물으시는 독자가 계시리라 믿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를 준비한 가장 결정적인 ‘당의정’이 등장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이 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쪽박을 차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예측하여 떼돈을 번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자, 이 대목에서 우리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 예측? 떼돈? 정말? 어떻게? 라는 실전 재테크스런 질문이 순간 뇌리를 스치면서 이 영화만큼은 꼭 관람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는가.
만일 그러셨다면 굳이 이 영화를 관람하실 필요까진 없다고 본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한마디로 요약하고 들어가는데, 스포일러 우려로 인해 말씀은 못 드리겠다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좀처럼 하려 하지 않는 일이다.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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