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3 20:25
수정 : 2016.06.04 10:02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 감별사
미 비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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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의 기본 흐름은 오랫동안 업계에 군림해온 표준 신데렐라 플랫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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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에는 다 있다. 주인공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가난하지만 맑고 밝은 시끌벅적 대가족의 생계 전부 짊어진 ① 처녀가장이다. 그녀는 도입부부터 닥쳐온 갑작스런 해고라는 날벼락에 굴하지 않고 즉시 고소득 알바로의 재취업에 성공하는데, 그 알바는 하필 고색창연한 성채까지 딸린 영지 버젓이 거느린 ② 영국 귀족 가문 외아들 돌보기다. 더욱이 그 외아들 윌(샘 클라플린)은 건강에 해로울 정도의 ③ 미남인데다가, 왕년 잘나가던 사업가-패션 아이콘-전방위 스포츠맨-여행 애호가 등등으로서 뭐 하나 빠지는 대목 없던 ④ 완벽 왕자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흉부 이하 전신이 마비되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바, 이 비극적 사고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경쟁자 없는 ⑤ 무주공산 독점 대시의 찬스를 뜻하지 않게 제공하는데다, 간병 관련 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주인공의 경력이 대시에 혹여 지장을 줄까, 영화는 별도로 건장한 ⑥ 간병 전문가까지 투입해줌으로써 윌 향한 루이자의 대시에 거침없는 16차선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있다.
그런데 잠깐.
따로 전문 간병인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루이자의 업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것은 윌의 어머니가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직설법 대사로 천명하듯 ‘윌의 기분을 북돋워주는 사람’ 즉 ‘애완인’인데, 이 정도면 거의 인권위 제소의 소지까지 있다 할 것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루이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난 누굴 미워해본 적이 없어요”라는 달라이라마적 대사를 태연자약히 날릴 정도의 ⑦ 해맑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불평등 고용 상황은 영화를 자칫 무겁고도 우울한 사회물로 흐르게 할 위험이 있는지라, 영화는 루이자에게 ⑧ 똑부러지고도 당찬 성격을 예비장착시켜 그녀에 대한 무시와 냉소와 냉대로 일관하는 윌에게 따끔한 훈계의 일침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때마침 그녀의 고용주인 윌의 부모와 윌 본인은 모두 교양과 우아함을 갖춘 귀족인지라, 루이자는 알바 잘림의 환란 대신 근무환경 개선을 달성함과 동시에 윌 향한 대시의 본격 물꼬를 트는 일거양득의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이렇듯 루이자는 현대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클래식이자 원형인 <캔디캔디>의 전 요소를 완벽 장착한 채, 윌의 ‘기분을 북돋기’ 위해 ① 경마장 ② 클래식 연주회 열리는 성당 ③ 영국의 고성 ④ 결혼 피로연 ⑤ 낙원섬의 5성 호텔 등을 섭렵하며 거침없는 로맨틱 관광무비적 행보를 이어간다… 등등 <미 비포 유>의 기본 흐름은 오랫동안 업계에 군림해온 표준 신데렐라 플랫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영화만의 차별점 및 특장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미 비포 유>는 일단 ① 캐릭터의 디테일 및 매력이라는 매우 고전적인 카드를 뽑아들고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영화는 상당히 높은 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그 승률의 대부분은 단연 여주인공 루이자 캐릭터로 인해 달성되고 있다. 일단 그녀가 구가하는 거의 미취학아동풍의 빨주노초파남보스런 패션감각은, 모더니즘 및 미니멀리즘 및 고상함으로 무장한 윌네 집과 가족의 패션 및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네온사인 텔레토비처럼 형광거리며 그녀의 티 없이 털털한 성격 및 행동거지 및 대사와 맞물려 상당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루이자의 천진난만함이라는 포석의 효과는, 예컨대 이런 장면, 즉 “여긴 프리미엄 회원만 입장가능 합니다”를 에이아르에스(ARS)처럼 반복하며 두 커플을 들여보내주지 않는 재수 없는 경마장 식당 매니저에게 그녀가 예의 그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언어형 귀뺨을 날리는 장면에서 확실하게 증명된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악다구니나 강퍅함 없이 코믹함 및 통쾌함만을 느끼고 깔끔하게 넘어가는 것은, 그렇다, 루이자 캐릭터의 천진난만함 및 그녀를 연기한 에밀리아 클라크의 외모 및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온 이마 주름 잡는 그녀의 푼수기 어린 웃음 한 방으로 <왕좌의 게임> ‘용엄마’의 이미지는 흔적도 없이 휘발된다). 이 영화에서의 그녀는 이른바 ‘로코의 여제’라 불리는 레이철 매캐덤스의 후계자로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감케 할 정도로 빛난다.
하지만 루이자 캐릭터의 영역은 이미 캔디캔디부터 브리짓 존스까지 이르는 수많은 선행자들이 남긴 굵직한 족적으로 가득한 영역인바, 영화는 결국 최후의 차별화 카드를 꺼내든다. 남주인공 ② 윌의 존엄사라는 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존엄사 논쟁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원작’이라는 헤드카피(이 헤드카피 자체가 영화의 결말을 명시한 스포일러다)만으로도 알 수 있듯 윌의 존엄사는 영화의 공식 승부처인데, 전신마비가 된 윌의 자발적 죽음을 향한 행보 및 이를 저지하려는 루이자의 헌신은, 위에 열거한 모든 진부한 캔디캔디적 설정들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기능성까지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주의! 여기서부터 절대 스포일러 구역) 결국 윌은 모든 능력과 마음 동원한 루이자의 노력에도 끝내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 어떤 사랑도 자신의 부상으로 인한 좌절감을 넘어설 수 없었음을 몸 던져 역설하고 만다.
그리하여 루이자는 결국 홀로 남게 되고 그러기에 오히려 뭇 관객들의 은근한 부러움을 더욱 자아내며 21세기의 캔디캔디로 거듭난다. 그리고 영화는 새삼 증명해낸다. 각종 로맨스 업계에 채워진 캔디캔디의 굴레는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임을.
또한 현재, 존엄사가 진정 필요한 자는 다름 아닌 캔디캔디임을.
한동원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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