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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05 10:15 수정 : 2017.03.05 10:59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로건>

영화는 주인공의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노화의 흔적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 로건=울버린≒휴 잭맨의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68년생, 그러니까 1년 뒤면 벌써 50줄에 접어드는 휴 잭맨. 그리고 2000년 영화 데뷔, 그러니까 벌써 데뷔 17년 차인 ‘울버린’ 캐릭터. 본디 울버린을 논함에 있어 나이 얘기를 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서두부터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은 나이라는 키워드가 <로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단 포스터만 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알알이 모공 모두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된 로건의 ‘얼굴 포스터’를 보자. 곳곳에 흉터는 물론이고 새치 희끗희끗 섞인 뻣뻣한 수염, 그리고 주름 등등, 포스터는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노화의 흔적을 지우기는커녕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포스터는 로건=울버린≒휴 잭맨의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탄생 17년…나이든 슈퍼히어로
딸과 만나 갈등·화해하는 과정
‘오버 더 톱’ ‘리얼스틸’ 플롯 따라가
CG 자제한 아날로그적 액션
노쇠한 주인공의 현실 묘사에
피폐한 ‘미래관’ 담아 차별화

죄책감 없는 ‘살인병기’ 로라 역
다프네 킨의 액션 연기 볼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해 개봉된 스타워즈 스핀오프 <로그 원>에서 피터 쿠싱(‘타킨 총독’ 역)과 캐리 피셔(‘레이아 공주’ 역)의 1977년 당시 얼굴을 ‘재생’해낸 컴퓨터그래픽(CG)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아직 그런 기술을 영화 전체에 통으로 쓰긴 여의치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주사 맞고 땅겨 가며 노화를 회피해봐야 결국 맞이할 것은 언젠가 찾아올 노화절벽뿐이라는 점에서 이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할 것이다.

녹과 먼지가 지배하는 미래

그런데 잠깐. ‘울버린은 안 다치고 안 늙지 않나?’라고, 자칭타칭 자인공인 마블덕후 아니신 민간인 관객들은 보편타당한 질문을 던지시리라 믿는다. 영화는 물론 이에 대한 확실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 상세한 사연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보면 상세히 알 수 있겠지만, <로건> 주최 쪽은 그러한 별도의 예습 없이도 ‘그냥 뭐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로 퉁치면 관람에 큰 지장 없는 수위를, 어련하겠는가마는, 적정하게 유지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노화를 통하여 <로건>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또한 포스터를 통해 파악된다. 신산의 세월이 남긴 흔적 뚜렷한 로건의 손(물론 ‘클로’가 튀어나온 상태의)과 그를 잡고 있는 다른 손 하나가 클로즈업된 ‘손 포스터’ 말이다. 여기에서 늙은 로건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어떤 어린아이의 손인데, 이 손의 주인을 말하는 것은 소정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으나, 감독인 제임스 맨골드부터가 언론 인터뷰에서 그 손의 주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으니 그냥 말하자면 (** 주의: 알고 싶지 않으시면 여기에서 중단 **) 그것은 로건의 딸의 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남남처럼 지내던 아버지와 딸의 만남-갈등-충돌-화해’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플롯을 취할 것임을.

이러한 플롯의 대가이자 거목이라면 역시나 뭐니뭐니 해도 스티븐 스필버그일 텐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스필버그가 총 제작을 맡고 휴 잭맨이 주연을 맡았던 2011년 작 ‘로봇 레슬링’ 영화 <리얼 스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사실상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1987년 작 팔씨름(=‘팔 레슬링’) 영화 <오버 더 톱>의 자손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인데, 그로부터 6년 후에 등장한 또 다른 휴 잭맨 주연작 <로건> 역시 이와 동일한 플롯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재미있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오버 더 톱>, <리얼 스틸>, <로건> 이 세 영화는 기본 플롯뿐 아니라 생계를 위해 운전을 해야 하는 팔뚝형 중년남 주인공이 그의 특기인 ‘레슬링’을 통해 자식과 교감을 시작하고, 그것은 두 사람의 자동차(그중에서도 트럭!) 여행을 통한 로드무비적인 과정을 통해 깊어지며, 그 근저에는 웨스턴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 등등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동일한 플랫폼에도 불구하고 <로건>은 나머지 두 영화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또한 <로건>은 지난 엑스맨 시리즈들(특히나 두 편의 울버린 시리즈)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이 차별성을 만드는 것은 우선 ①코맥 매카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로드> 등의 원작 소설가)적 세계관의 도입이다.

<로건>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2년 후인 2029년. 하지만 그 미래는 우리가 영화 속 미래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데이터와 네트워크와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사이버 펑크적’인 미래가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로건>의 미래는 ‘녹과 먼지’(Rust & Dust)가 지배하는 황량하고 피폐한 세계다.

일단 로건과 ‘자비에 교수’(이번에는 매커보이 아닌 스튜어트)가 은둔하고 있는, 미국-멕시코 접경지대의 버려진 플랜트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세계에서 곧장 가져온 듯한 외형이다. 특히나 이 은둔처에서 살림을 도맡으며 그들을 돌봐주는 돌연변이인 ‘칼리반’의 모습은 <분노의 도로>의 세트장에 그대로 데려다놓아도 전혀 이질감 없을 매끈 머리-하얀 얼굴이다.

로라는 노쇠한 로건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살인병기다. 그녀는 자신을 사냥하러 온 사냥꾼들의 신체를 가차 없이 베어 내던진다. 로건이 ‘울버린’으로서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해왔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짐승’이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하지만 <로건>의 비주얼은 단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그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자비에 교수의 거처로 쓰이는 거대 급수탱크는 곳곳에 녹으로 뚫린 구멍들로부터 햇빛이 들어와 일견 초저예산 플라네타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자비에 교수의 핵심 장비인 ‘세레브로 룸’에 대한 일종의 풍자 또는 패러디다. 동시에, 나이가 들어 치매 증상이 오기 시작한 자비에 교수의 두뇌상태에 대한 시각적 묘사이기도 하다.

이 녹자국과 흙먼지와 쇠락과 퇴행이 가득한 공간에선 그 누구도 스판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대신 로건은 낡은 엑스맨 코믹북을 집어던지며 “쫄쫄이로도 죽음은 막지 못해” “진짜 벌어졌던 일은 이딴 애들 만화 따위와는 전혀 달랐어” 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대사를 던진다. 자비에 교수에게 “우린 신의 계획이 아니라 실수였다”고 뇌까리는 그의 모습은 과연, 감독이 언급하고 있듯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인공 ‘윌리엄 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늙은 전설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를 통해 그 자신이 쌓아왔던 서부 신화를 허물고 비판했던 것과 유사하게, <로건> 역시 늙은 로건을 통해 엑스맨 신화(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슈퍼히어로 신화)를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돌연변이들의 다채로운 초능력과 그를 시각화한 과대망상적 시지를 극도로 자제한 채, 최대한 몸과 몸이 부딪치는 아날로그적 액션을 지향하고 있는 연출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로건>에 진정 새로운 색채를 부여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미래관이다. 자유의 여신상 따위는 없어져버린 지 오래고, 유전자 조작 곡물이 이미 일상을 지배하고, 운전자 없는 ‘오토트럭’들이 사람들에게 시뻘건 눈을 위협적으로 부라리며 질주하는 <로건>의 세계는 이미 희망 대 절망의 싸움 자체가 사라져버린, 그리하여 절망이라는 단어 자체마저 사라져버린, 그야말로 코맥 매카시적인 세계다.

로건의 딸 ②‘로라’(다프네 킨)는 바로 그 세계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따라서 그녀는 주인공에 딸린 부속품이 아닌 영화의 색채를 결정짓는 핵심 인물이다. 로건과 로라는, <오버 더 톱>이나 <리얼 스틸>이 감동(=계급을 초월해낸 혈육의 정)과 쾌감(=가진 자들의 얄팍함과 위선에 대한 조롱)을 위해 설정한 ‘블루칼라 아버지와 귀공자 아들’이라는 조합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로라는 노쇠한 로건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살인병기다. 그녀는 자신을 사냥하러 온 사냥꾼들의 신체를 가차 없이 베어 내던진다. 그 모습은 맹수를 넘어 거의 좀비에 가깝다(이 장면들에서 다프네 킨의 연기와 액션 연출은 놀랍다). 그렇다. ‘로라’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굶주린 어린아이가 아니다. 적어도 그녀는 로건이 ‘울버린’으로서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해왔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짐승’이다. 그렇다. 그녀의 존재는 ‘나는 짐승이 아니다’라는 믿음에 평생 매달려온 로건에게는 악몽 그 자체인 것이다.

더구나 로라는 영화가 거의 종반에 이를 때까지 아무 대사도 하지 않는다. 대사를 하더라도 로건이 알아듣지 못하는 빠른 스페인어뿐이다. 둘에겐 애초에 교감을 위한 기본 수단이 없고, 의지 또한 없다. 자비에 교수의 존재와 능력이 이처럼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상황이 또 있었던가. 이제 거의 로건의 연로하신 춘부장이 되어 있는 자비에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허약하고 추레해진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 즉 초월적 능력의 도움 없이 마음만으로 마음을 여는 일을 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울버린의 마지막 구원은?

그럼에도 ‘로라’는 로건에게만큼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종반 직전까지 둘은 잘해야 이해관계로 맺어진 한시적 협력자일 뿐이다. 예컨대 그녀는 여행과 싸움에 지쳐 기절하다시피 쓰러진 로건을 대신해 능숙하게 트럭을 운전한다(이것은 자신을 ‘무식한 노동자’라 부르는 아들에게 트럭 운전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아들의 돼먹지 못한 계급적 우월감을 교정하던 <오버 더 톱>의 주인공에게는 거의 재앙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하여 로건의 앞에 남겨진 선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는 영화가 그의 노화를 기정사실화했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목적지를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로건>은 코맥 매카시의 세계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퍼펙트 월드>(1993)의 모습을 한 채 마지막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로건>에게 기꺼이 축하의 꽃을 던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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