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도부로부터 20대 총선 '험지 출마'를 요구 받아온 안대희 전 대법관이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20대 총선 출마지역 발표 기자회견을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맨 오른쪽은 마포갑 새누리당 강승규 당협위원장.연합뉴스
#안대희 대 강승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평소 경찰력이 배치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지만, 이날은 빨간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은 이들까지 경찰이 막아서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강승규 지지자들만 막고 있다”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 서울 마포갑 당협위원장인 강승규 전 의원의 지지자들이었다.
오전 10시30분 당사 4층. 기자회견장은 ‘안대희 지지자’와 ‘강승규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강 전 의원이 맞불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면서 강승규 지지자들의 당사 출입을 막을 명분이 사라졌던 것이다.
김세현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이 안대희 전 대법관의 출마 기자회견 사회를 봤다. 사회자는 “질문을 5~6개만 받겠다”고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는 것을 참지 못한 강 전 의원과 지지자들이 격한 목소리로 “마포갑이 험지냐”, “누가 여기로 오라고 했느냐”고 따져물었다. 사회자는 “지금은 기자회견이다. 기자가 아닌 사람은 질문을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기자회견 내내 여기저기서 항의와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고향인 부산 출마를 접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서울 험지 출마’ 요구를 수락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버티고 있는 마포갑을 ‘험지’로 택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중학교에서 마포 숭문중으로 전학했던 안 전 대법관은 “마포는 제 인생에 디딤발이 됐다. ‘정치인 안대희’는 마포에서 시작하려 한다”며 지역구 선택 이유를 밝혔다. ‘마포갑을 험지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진정한 험지”라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마포갑은) 지난 총선에선 8700여표를 지고, 대선 득표에서는 11% 차이가 났다. 해운대 출마를 원했지만 서울 선거가 어렵다는 당과 당 대표의 의견을 따르게 됐다”며 ‘희생’임을 강조했다.
안 전 대법관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강 전 의원 지지자들 사이에서 거친 항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포가 뭐가 험지냐”, “차려놓은 밥그릇에 숟가락 얹겠다는 것이냐”, “대법관 출신이면 대법관 답게하라”. 이 과정에서 누군가 “이 ××야”라는 욕까지 했고, 한 여성 지지자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안 전 대법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베스트셀러인 <미움받을 용기>를 읽었다며,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마포갑 출마선언문의 제목 역시 ‘용기있는 남자 안대희, 마포갑 출마 선언’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시절 여야를 가리지 않는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 검사’라는 평가를 받고, 검사 출신으로 대법관까지 지낸 그로서는 아무리 ‘미움받을 각오’를 했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정치 신고식으로 보였다.
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은 안 전 대법관을 기자회견장에서 몰아내듯 한 뒤, ‘마포갑 안대희 출마기자회견’이라는 대형 플래카드 위에 재빠르게 블라인드를 쳤다.
마이크를 잡은 강 전 의원은 “안대희 후보는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영입된 인물로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국무총리후보로 지명됐지만 청문회도 해보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5개월만에 16억원의 수임료를 챙긴 전관예우 의혹 때문이다. 이런 안 후보가 새로운 영입인사라면 대한민국 국민 누가 믿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지난해 2월 당협위원장으로 복귀한 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어 무너진 당조직을 복원했다. 돈이나 물건만 도둑질해야 도둑인가.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재건한 당협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려는 책동은 더 큰 도둑이 아니냐”고 따졌다.
강 전 의원은 “안 후보가 마포갑에 출마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이 확정한 경선 규칙을 따라야 한다. 안 후보는 영입인사도 아니고 마포갑은 험지도 아닌 만큼 당원 대 국민 비율 3 대 7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결정된 새누리당 공천룰은 당내 경선의 여론조사 비율을 당원 30% 대 일반국민 70% 비율로 정했는데, 영입인사의 경우에는 일반국민 100% 여론조사 경선을 하도록 했다. 일반국민 100% 조사의 경우 지역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폭이 줄어들기 때문에 영입인사에게는 유리한 반면, 당협위원장 등 기존 인사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강 전 의원은 “일반국민 100%로 여론조사를 강행한다면 이는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분열의 결과는 필패다. 이런 결정을 내린 안 후보와 당의 책임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관련 영상#오세훈 대 박진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진 전 국회의원
안대희 전 대법관이 이른바 ‘험지 출마’를 수용해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면, 오후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험지 출마’를 거부하면서 또다시 불꽃 튀는 맞불 기자회견이 벌어졌다.
오후 2시 당사 4층 기자회견장. 오 전 시장은 험지에 나서달라는 당의 요구에도 “종로 역시 험지”라며 자신이 고집해온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지역 3선 의원인 박진 전 의원과 경선을 해야 해 새누리당으로서는 ‘출혈’이 불가피해졌다. 박 진 전 의원은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결하도록 하고, 오세훈 전 시장은 김한길,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 야당의 다른 ‘거물’들과 겨루도록 하려던 김무성 대표의 ‘거물 험지 차출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예비후보등록 첫날인 지난달 15일 이미 종로에 등록한 오 전 시장은 출마선언문에서 “이른바 험지 출마 요청을 받고 지난 한 달여간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지역에 가서 야당의 거물급 인사를 상대해 수도권 선거 판세를 견인해 달라는 당 대표의 요청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선택은 종로였다. 오 전 시장은 “지난 5년간 종로에서는 총선,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선,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야당 대표까지 지낸 5선의 정세균 의원이 다시 출사표를 던져 결코 만만치 않다”며 ‘종로 험지론’을 거듭 주장했다.
오 전 시장이 기자회견을 마칠 즈음, 박진 전 의원이 갑자기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사전예고도 없었다. 좁은 기자회견장이었지만 퇴장하는 오 전 시장과 입장하는 박 전 의원은 동선을 달리하며 악수를 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일부러 피한 것이다. 박 전 의원도 지난달 15일 종로에 예비후보등록을 하며 오 전 시장과 ‘등록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박 전 의원은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방금 전 오세훈 전 시장이 종로 출마를 발표했다. 명분도 실리도 없다. 당의 총선 승리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돌려말하지 않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그는 “어려운 서울 강북지역에서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해야 총선 승리를 할 수 있다. (험지 출마라는) 당의 방침과 전략에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자신과의 인연과 의리를 거론하며 오 전 시장의 선택을 비판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오 전 시장이 나섰을 때는 조직본부장을 맡아 도와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로 출마를 강행하는 것을 보고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 전 시장이 2011년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해 야당에 시장직을 뺏긴 사실을 거론하며 “오 전 시장은 번번이 당의 방침을 어겨 피해를 줬다. (험지 출마라는) 당의 권고를 이번에도 무시했다”며 비판했다. 그는 당의 여론조사에서도 자신과 오 전 시장 모두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오 전 시장이 일전에 나에게 ‘형님, 강남으로 가는게 어떻겠느냐’고 하길래 ‘난 강남 스타일이 아니다. 강북 스타일이다. 오세훈이 강남 스타일 아니냐’고 답해줬다”고 했다.
#김무성 대 험지출마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직접 만나 험지 출마를 권유해 ‘승락’을 받아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서는 ‘반타작’을 한 셈이다. 안 전 대법관이 김 대표가 제안한 서울 야당 지역구들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고른 마포갑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타작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오후 새누리당 당사를 쓸고간 소동의 정치적 해석이 한창이던 오후 3시30분께 ‘안대희·오세훈 두 출마예정자의 출마선언에 부쳐’라는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본인들의 최종 결정을 존중합니다. 당의 공천룰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공천이 이뤄질 것입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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