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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5 11:32 수정 : 2015.12.29 11:06

2015년 사건·사고 현장을 누볐던 <한겨레> 사진기자들이 한해를 마감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을 꼽아 봤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팍팍한 우리 현실탓인지 ‘무거운 사진’이 많습니다. ‘유쾌발랄’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2016년을 기대하며 ‘2015년 나의 사진’을 11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일곱째는 이정아 기자가 꼽은 사진입니다.

⑦ 쏜살같이 달려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시간

쏜살같이 달려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시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3년 전에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지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신 김복득(97) 할머니십니다.

할머니는 그동안 일본의 사죄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힘쓰는 한편,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전 재산을 기부하는 등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펼쳐오셨습니다. 때문에 언론과도 친숙한 유명인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언론에 노출된 분이라 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뵈러 가는 길은 늘 마음이 어렵습니다. 사진설명을 쓸 때마다 이분들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아프고, 이제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부음을 전할 때마다 남아계신 분들을 헤아릴 수밖에 없는 점도 죄스러운 탓입니다.

김복득 할머니를 처음 뵈러 갔던 2013년 봄.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와 활동가들을 따라나섰습니다. 일본에서 증언을 수집하기 위해 한국에 온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의 여정에 동행한 참이었는데 이분들의 원래 목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여러모로 조심스러웠습니다. 취재를 다녀와 사진을 살펴보니 현장에서 너무 조심했던, 그래서 소극적인 태도가 그대로 사진에 담겨 있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제게 한 선배가 말씀해주셨습니다. “조심하는 건 좋다. 다만, 이거다, 싶을 땐 양해를 구하고 적극적으로 취재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차피 네가 그 현장에 갔다는 것 자체가 민폐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으로 그 폐를 갚아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출장이 아닌 개인 여정으로 다시 통영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십여 분 지나 “아, 며칠 전 그 처자?” 하고 떠올리며 웃으십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할머니를 찾아왔겠습니까.

할머니의 단칸방에서 함께 쌍화차를 끓여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홀로 사니 아무래도 목욕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십니다. 할머니가 먼저 청하셨는지, 제가 함께 가자 말씀 드렸는지는 기억이 잘나지 않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지팡이를 짚고 통영 북신동 골목을 내려가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여자들이 함께 목욕탕에 간다는 건, 상대에게 나를 무장해제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날 할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는 동안 할머니는 제 마음속으로 훅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2013년 사진이 왜 ‘올해의 사진’이냐고요?

그동안 취재한 할머니 사진들이 올해에야 지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일간 신문의 특성상 흔치 않은 일인데, 이렇게 할머니의 사진을 모아놓고 보니 어르신께 시간이 얼마나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렸습니다. 제자리에서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도록 새해에도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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