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광주·전남 지역에서 압승한 다음날인 14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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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민심] (3) 광주시민 8인이 말하는 호남민심
분위기는 내내 묵직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표심을 바꾼 이들도, 더민주를 고수한 이들도 야당이 제1당과 3당이 된 이번 선거 결과에 기뻐하는 내색이 없었다. “새누리당이 워낙 못해서지, 더민주가 잘해서 나온 결과는 아니다”라는 냉정함부터, “국민의당을 찍었지만 더민주도 좋아한다. 더민주가 좋은데 앞으로 더 잘하라는 각성 촉구다”라는 애정까지 호남의 민심은 투표 결과로 드러난 것보다 한층 더 복합적이었다. 호남의 4·13 총선 민심을 들여다보는 이번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은 지난 22일 저녁 광주에서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 김춘석 이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참석자 가명은 이번 총선에서 찍은 당(더불어민주당=더, 국민의당=국)과 나이를 의미한다. 참석자 8명 모두 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가 동일해 ‘분할투표’는 없었다.
더민주 왜 외면했나
“친노정당된 뒤 호남 홀대총선때 사과 진정성 없어” 호남 고립? “더민주 지지 거두고
정치판 변화 이끈 것” 더민주에서 국민의당으로 바꾼 이유는? 참석자 대부분 기존 지지 정당은 더민주였다.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더민주의 호남 홀대, 동교동계의 국민의당 합류 등이 꼽혔다. 국51(남·소프트웨어 사업체 운영) “‘호남은 민주당’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문재인씨가 당 대표가 되고 나서 친노정당이 되고, 민주당이 호남을 홀대했죠. 과거 동교동계가 다 빠져 나와서 새롭게 창당하는 마음으로 국민의당을 만들었어요. 안철수씨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모르겠고 확실한 기준점이 없지만, 민주당 뿌리가 깊은 동교동계가 다 그리로 모였고 디제이(DJ)의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봤어요.” 국48(여·전업주부) “동교동계를 생각해서 국민의당으로 바꿨어요.” 스스로를 ‘86세대’라 칭한 국51에게 지금의 더민주는 호남을 대변하지 않냐고 물었다. 국51 “전혀 아니죠. 겉과 속이 다르죠. 선거 전에 문재인씨가 두 번 왔다 갔어도 형식적인 의미였고 진정성이 부족했어요. 표 달라고 구걸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호남에서 버림받으면 포기하겠다’는 어불성설같은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면서 동교동계 정신을 받는 건 ‘서자’인 국민의당이라고 봤어요.” ‘더민주가 호남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는 대답에서 국51은 특히 단호했다. 총선 직전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의 광주 방문과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은퇴하겠다’는 선언이 국51에게는 외려 국민의당으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된 듯했다. 광주 번화가인 상무지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국45에게도 문 전 대표의 방문이 영향을 미쳤다. 국45(남)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지고 난 후부터가 문제였죠. 전라도가 ‘몰빵’하다시피 그쪽에 표를 줬어요. 떨어졌으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대처가 있어야 해요. ‘내가 그만큼 열심히 했는데 기대에 못 미쳐서 미안하다’라고 자숙기간이 필요했어요. 이번에 선거를 안 하려고 했어요. 결혼 20년차인데, 집사람한테 물어보면 이번에 (의견이) 갈렸어요. 집사람은 2번이라고 했는데 나는 ‘지지하는 사람 없다, 투표 안할란다, 같이 놀러가자’고 했어요. 왜냐면 자기들끼리 국회에서 맨날 싸움만 하고 국민들은 뒷전이잖아요. 그게 진짜 신물 나서 ‘투표 포기하련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런데 문재인 대표가 제가 일하는 상무지구에 유세를 왔는데 정청래 의원이 왔어요. 제가 정청래를 진짜 좋아해서 유세를 봤어요. 그런데 정청래는, 더민주 공약이나 후보가 뭐가뭐가 좋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3번만 되게 욕하더라고요. 그래서 (반감 때문에) ‘투표하련다, 기권하느니 3번 찍어서 한 표라도 힘을 실어주련다’ 했죠. 사실 3번 후보가 누군지도 몰라요. 저는 2번이나 3번이나 똑같다고 봐요. 서로 비난해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에요. 어차피 내년 대선에 합칠 거잖아요. 그러면 그때 가서 어쩔려고? 서로 되게 욕해놓고. 저는 그게 걱정이에요. 더민주를 계속 지지한 이유는? 이번 선거에서 더민주를 찍은 4명은 말없이 국민의당 지지자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말문이 트이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다. 국민의당 지지자 일부가 여전히 더민주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이들은 국민의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더20(여) “저는 안철수가 있어서 국민의당을 안 뽑았어요. 정치권에 좋은 의도로 들어온 것 같지 않았어요. 또 에스엔에스(SNS)에도 더민주가 좋게 많이 나왔어요. 에스엔에스를 많이 보다 보니까 뽑게 됐어요.” 더34(여·피아노 강사) “저는 안철수가 정치권에 안 들어왔을 때 좋아했어요. 사람은 되게 좋아 보이지만 정치를 하려면 단호한 것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어요. 새정치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말만 하지, 뭘 하고 제대로 말한 건 없었고 흔들리는 면이 보여서 국민의당은 별로 안 하고 싶었어요. 사실 더민주 찍은 이유는, 세월호 문제도 있고, 새누리당이 대통령 당이니 거기에 질려버려서, 새누리당이 싫어서 뽑은 측면이 많은 거 같아요.” 더32(남·사무직 회사원) “저는 테러방지법 통과때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더민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전에 봐왔던 정치의 모습은 안 되면 싸우고 문 가로막고 의장석 점거하고 했는데, 이번엔 야당에 감명받았어요. 동교동계가 국민의당으로 넘어가면서 호남은 다 국민의당으로 넘어갔잖아요. 그걸 보면서 안철수가 이번 선거에는 대놓고 지역색을 너무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순천에서 새누리당, 부산·경남에서 더민주 당선자가 나왔잖아요. 지금 조금씩 지역감정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의당이 지금 하는 건 예전 민주당 인사를 끌어와서 호남 쪽에 데려다 놨으니까 이 사람을 찍어달라로밖에 안 보였어요.” 더민주를 찍은 이들에게 국민의당이 광주 8석을 모두 가져간 이번 결과는 의외였다고 한다. 더20은 개표방송을 보다가 텔레비전을 꺼버렸다고 했다. 고립감을 느낀다고 했다. 더20 “텔레비전 보면서 ‘이렇게 나오면 전라도가 외딴 섬으로 남겠구나’ 했어요.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지역이 더민주를 뽑았는데 광주가 다 국민의당으로 넘어가면, 매번 ‘전라도 혼자 논다’는 말이 많았는데 더민주를 다 잃어버리면 더 고립될 거 같아요. 빨리 광주를 떠야지 싶어요. 더 발전이 없어질 거 같아요.” ‘호남 고립’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국51 “고립보다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쪽 지역이 정치적 힘이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걸 많이 어필한 거 같아요. ‘확실히 아니다’고 끊어버리니까, 뒤에 뭐가 있든 ‘아니다’ 해버리면서 바로 국민의당으로 갈아타게 된 거잖아요.” “이당도 저당도 전폭 지지 안해…새누리에도 기회 열려”
“호남 대변 잘할 것” 국민의당은 호남당인가? 국민의당으로 화제를 바꿔봤다. 지역구 선거의 경우 국민의당이 호남 외에는 안철수(서울 노원병), 김성식(서울 관악갑) 2석만 얻은 것을 두고 일각에선 ‘호남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한 생각은 엇갈렸다. 국59(여·전업주부) “맞다고 생각해요. 좋은 의미로요. 호남을 대변하는 당이죠.” 더32 “호남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맞는 말이죠. 그거에 부정적입니다. 국민의당이 (유권자들에게) 어필이 잘 됐다고 하면 호남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의석이 나와줬어야 한다고 봐요. 결국 지역적으로만 나눠진다는 느낌이 강하고요. 저는 지역감정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몇 백년 전부터 이어진 것도 아니고 최근에 들어서 나눠진 건데 그걸 계속 당연하다는 식으로 보잖아요.” 더34 “저도 비슷해요. 부모님들이 과자도 무조건 해태 것만 먹으라고 하고 롯데 거 절대 먹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선입견이 이제는 싫어요. 옛날에는 ‘호남은 민주당’이어서 (다른 지역에서) 선입견 때문에 안 뽑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더민주가 (다른 지역에서) 많이 됐으니 내년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민주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져서요. 호남도 그런 면에서 깨지면 좋겠어요.” 호남민심은 고민중 “이정현·정운 천 당선됐으니
새누리도 변화 하길 기대” 국45 “국민의당이 비례대표로 볼 때는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았어요. 호남 자민련은 아니죠. 왜 (지역구) 배지를 못 달았냐 하면 창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인물이 얼마 없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을 줘야 해요.” 국51 “국민의당 소속 출마자가 수도권에서 안 된 이유가 지명도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다음 총선에서는 달라질 거라고 보고요. 이번에는 연습게임이었고 다음에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당을 호남당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정하지 않아요.” 국민의당에 투표한 이들은 향후 기대가 큰 듯했다. 더민주에게서 돌아선 이유 중 하나가 ‘호남 홀대론’이었던 만큼, 향후 국민의당이 호남을 위해 일을 잘하리라고 보는지 물었다. 국59 “호남 이익을 잘 대변할 거라고 봐요.” 국45 “저는 호남을 대변하지 못할 거라고 봐요. 힘이 없어요. 38석 가지고 뭘 해요? 옆에 새누리당과 같이 해서 뭘 좀 받을 수 있겠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어요. 조금 노력해서 키워야죠.” 더32 “더민주 입장에선 자기 자리를 뺏긴 거잖아요. 뺏겼다고 망연자실할 게 아니라 다시 찾아와야 해요. 자리를 차지한 쪽(국민의당)보다 뺏으려고 하는 쪽(더민주)이 더 달려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을 반성하고요.” 의외로 새누리당 얘기도 나왔다. 호남 민심이 더민주와 국민의당 사이 혼란으로 ‘무주공산’인 사이에 새누리당이 적극 공략할 경우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국45 “저는 역으로 새누리당에서 호남을 위해 더 잘해줄 거 같아요. 호남은 지금 누구를 정확히 지지하지 않아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요. 전라북도 정운천씨랑 전라남도 이정현씨가 한 명씩 있어요. 호남에 전폭적으로 잘하면 (새누리당에도) 확 휩쓸릴 거 같아요.” 국51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현재 상황에서 더민주나 국민의당에 기대하기보다는 집권 여당이 해주는 게…. 물 위에 떠있는 난파선을 아마 여당이 끌어주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인식의 변화도 가질 거고요. 더민주나 국민의당이나 기존의 타성에 젖어있어요. 하지만 전남·전북에서 여당이 한 명씩 당선되니 새누리당도 ‘ 우리가 잘해주면 되겠구나’ 하는 걸로 변화할 거 같아요.” 광주는 더민주를 버렸나? 초록색으로 물든 이번 선거 결과, 광주는 더민주를 버린 것인지 물었다. ‘버렸다’는 말부터 내놓은 건 대학생 더20이었다. 그러나 국민의당을 찍은 이들도 더민주에 대한 미련을 거둔 건 아니었다. 더20 “버렸죠, 아예. 누가 봐도 버렸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요.” 국51 “저는 개인적으로 버렸다고 생각해요.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다고 봐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호남 사람에게는 근성이 하나 있어요. 한 번 아니면 아닌 거예요.” 국45 “더민주도 좋아해요. 국민의당은 잘 몰라요. 더민주가 좋은데 앞으로 더 잘 하라고 각성시킨 거예요. 이번 기회에 호남이 더민주를 거부했잖아요? 반성 많이 할 거예요. 매일 오든가, 여기 와서 살든가 다시 이쪽 사람들 마음을 가져가야죠.” 국48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호남이 더민주를 버렸다고 생각 안 해요. 이번에 더민주가 느낀 것도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광주/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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