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날벼락’은 현재 진행형
작년 삼성서울병원 어머니 간호
16일 뒤 증상 나타나 확진
‘무개념 공무원’ 여론 뭇매
정부 발생병원 늑장 공개하고
“잠복기는 14일” 설명해 혼란 키워
대구, 지각신고 이유 해임 의결
김씨 “내 잘못도 있지만 너무 가혹”
소송 이겼지만 다시 징계 움직임
방역체계 뚫린 정부는 놔두고
김씨에게만 돌 던질 수 있나
“원고에 대하여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처분을 하는 것은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위법하다.”
지난달 10일 대구고법은 이렇게 판결하며 ‘메르스 무개념 공무원’으로 불렸던 김아무개(53)씨의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인 김씨는 지난해 대구지역의 유일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였다. 김씨는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지난 1년 동안 죄인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나에 대한 욕설을 들으면서 가족들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메르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던 지난해 6월15일, ‘메르스 청정지역’이었던 대구가 뚫렸다. 대구의 첫 메르스 확진자는 대구 남구 대명3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던 6급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김씨였다. 그는 메르스에 전염되고 17일 동안 출근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했다. 경로당 업무를 맡았던 김씨는 경로당 3곳을 돌며 노인들을 접촉했고 동료 직원들과 회식을 했고, 예식장, 장례식장, 식당, 목욕탕을 다녔다. 김씨는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자 스스로 신고했다.
김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늑장 신고’를 했다는 지적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역언론에서는 ‘무개념 공무원 메르스 불렀다’거나 ‘미필적 고의 상해죄 적용할 수도’ 같은 보도를 하며 김씨를 거세게 비판했다. 인터넷에서는 ‘대구 메르스 공무원을 사형시켜야 한다’, ‘대구에 낙타가 17일 동안 돌아다녔다’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 6월16일 메르스 확산방지 간담회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공무원이란 사실에 대해 시민들의 공분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때 몸 상태가 나빴던 김씨는 완치돼 지난해 6월26일 경북대병원에서 퇴원했다. 김씨 확진 판정 이후 대구에서는 다른 메르스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7월6일 정부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하자 김씨는 잊혔다.
지난해 8월1일 대구 남구는 ‘늑장 신고로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공직자로서 시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줘 지방공무원법상 복종·성실·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김씨를 해임했다. 그는 해임이라는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며 대구시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20일 법원에 남구청장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은 왜 ‘메르스 무개념 공무원’으로 몰렸던 김씨의 손을 들어줬을까. 김씨는 지난해 5월27일 대전에 사는 누나와 함께 허리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가 허리 치료를 받는 이틀 동안 병원에 머물렀다. 병원비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는 병원에 머물던 둘째 날인 5월28일 응급실에서 14번째 메르스 환자로부터 전염됐다.
김씨가 삼성서울병원에 갔을 때 이곳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때만 해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의료기관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로 돌아온 그는 대명3동 주민센터에 출근해 업무를 보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했다.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부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메르스 환자 발생 의료기관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6월7일이었다. 김씨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되고 10일이 지났을 때였다. 김씨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다녀온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고 몸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흘 뒤인 6월10일 그와 함께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온 누나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충남대병원에 격리됐다.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13일이 지났을 때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김씨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이틀 뒤인 6월12일 매형으로부터 누나가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처음 전해들었다.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된 지 15일이 지났을 때였지만, 여전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김씨에게 몸살 등의 증상이 나타난 것은 다음날인 6월13일이었다.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온 지 16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가 밝힌 메르스 최대 잠복기(14일)가 이틀이 지나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감기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다음날인 6월14일 오후 1시30분께 남구 대명5동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의 잠복기는 평균 5일 정도다.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짧게는 2일, 길게는 14일 정도 지난 후 증상이 발생한다. 14일 동안 증상이 없다면 자가격리를 해지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지나서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최대 잠복기를 늘려잡는 대신, 아예 확진자들의 발병일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자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6월15일 연차휴가를 내고 남구보건소를 찾았다. 그는 6월16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구 첫 메르스 확진 환자인 공무원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6월17일 오후 집중치료를 받기 위해 휠체어에 탄 채 대구의료원에서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