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02 13:53
수정 : 2016.10.11 12:03
[밥&법] ‘자발적 비혼모’ 찬성과 반대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법 정비
비혼 여성에 정자 기증은 불법
한쪽선 “기존 가족 관념서 벗어나
여성 혼자 낳아 키울 준비 됐다면
적극 도울 제도 필요” 지지
다른쪽선 “정자 기증 허용 땐
가난한 여성이 돈 받고
대리모 되는 등 악용 소지”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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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정자은행(Nordisk Cryobank) 직원이 고객에게 보낼 정액 샘플을 정자 모양으로 디자인한 냉각용 저장 장치에 담고 있다. 정자은행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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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마음이 좀 급해졌어요. 가임 기간이 지나버리면 그만이잖아요. 이러다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니냐는 생각에….”
40대 후반인 이지연(가명)씨는 미혼이다. 다들 부러워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세칭 ‘골드미스’다. 20년 이상 일만 바라보며 살다 혼기를 놓쳤다. 그는 몇 해 전부터 ‘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온통 휩싸여 있다. 경제적인 여건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육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많이 쌓았다.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것 못지않게 양육할 자신도 있었다. 유일한 걸림돌은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아무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죠. 부모님이나 가족들과 상의를 한 건 아니지만, 제가 결정해야 할 일이죠.”
고민하던 이씨는 올해 초 한 병원을 찾았다. 정자를 기증받아 체외수정을 통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방법이 있는지 상담했다. 병원에서는 현행법상 배우자가 없으면 정자를 기증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독신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건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남성의 문제로 불임인 부부들은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낳아 기르잖아요. 육아 능력이 충분한데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막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봐요.”
■ 법적 남편 동의 필수 결혼 없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미혼여성, 이른바 ‘미스맘’들이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는 건 불법이다. 2005년 말 ‘황우석 사태’ 이후 난자 채취의 위험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관련 법규가 강화됐다. 이전까지 미혼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데에는 별다른 법 규정이 없었다. 이후 현재의 생명윤리법은 난자의 채취 및 기증은 물론 정자의 기증 역시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이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배우자, 즉 법적인 남편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 경우에도 법적으로 결혼한 남편에게 무정자증이 있거나 심각한 유전질환이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정자를 기증받는 과정도 까다롭다. 정자를 기증하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고, 혹시 이 남성이 결혼했다면 배우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의료인이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돼 있다. 결국 미혼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는 셈이어서, 자신의 아이를 낳으려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연구부장은 “현재 관련 법률에서 난자와 마찬가지로 정자도 돈을 받고 매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는 경우 남성 쪽 원인으로 불임부부가 된 이들이 주된 대상”이라며 “미국이나 영국 등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배우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일은 금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외수정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대한보조생식학회의 윤리지침에서도 법률적인 결혼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정자 기증을 통해 인공임신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자은행에서는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정자를 제공하지 않는다. 김수웅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백혈병 등 여러 암에 걸렸을 때 항암치료 과정 중에 정자가 망가질 우려가 있는 남성의 경우 미리 정자를 보관한 뒤 치료 뒤 임신을 원할 때 사용하거나 무정자증 등이 있는 남편을 둔 여성이 임신할 때 다른 사람의 정자를 제공받을 수 있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에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영국, 스웨덴 등은 허용 이지연씨는 외국에서 정자를 기증받는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 등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는 미혼여성에 대한 정자 기증이 허용된다. 일본의 경우 자국인에게는 허용하지 않지만 외국인의 시술을 막지는 않고 있다. 이씨는 “정부는 물론 정치권 등에서 저출산이 문제라고 얘기하잖아요. 혼자 산다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미국 배우 조디 포스터는 1998년과 2001년 독신 상태에서 인공수정으로 두 아이를 출산해 키우고 있다. 그는 훗날 자신이 성소수자(레즈비언)임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방송인 허수경씨가 시험관 아기 시술로 출산한 사실을 공개해 화제를 낳은 적이 있는데, 미혼여성에 대한 정자 기증 관련 법규가 강화되기 이전 일이었다. 이후 미혼여성에게 정자를 제공한 의료인의 행위를 처벌하지만, 수요자가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로 가서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아직 없다.
정자 기증을 통한 출산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체외수정 등 시술비가 비싼 것도 문제지만 의료사고 등 만일의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인공임신 시술을 받으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마취사고는 물론 난소 조직이 망가지거나 출혈로 인한 각종 합병증도 생길 수 있다. 자궁외 임신, 다태아 임신 등으로 산모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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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 있는 유럽정자은행(Nordisk Cryobank)은 정액 견본 등을 냉각저장장치가 달린 자전거에 실어 운반한다. 이 자전거는 서민들에게 정자 기증을 홍보하고 촉진하기 위해 남성의 정자 모양을 디자인해 만들었다. 유럽정자은행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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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가족 도입 논란 ‘남편 없는 아이’를 원하는 미스맘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갈린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다양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우호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자칫 정자와 난자가 매매되거나 대리모 등이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강연재 한국여성변호사회 전 대변인은 “법적인 부부만 정상으로 보는 견해와 제도가 지금도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가족 등의 아이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지 않느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이 아이를 직접 낳아 기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정상 부부’보다 더 부모에게 필요한 준비와 자격이 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아이를 잘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도 주목된다. 최근 나경원 저출산대책특별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미혼모나 동거가족 등의 출산을 다양하게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법적 혼인으로 출생한 아이와 똑같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특위가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호주제 폐지로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딸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결혼으로만 맺어지는 기존 가족 개념의 틀을 깨고 각자의 결정권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정자·난자의 매매 가능성과 함께 우회적인 방식으로 대리모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과장은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는 것을 악용하면 자칫 가난한 여성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대리모를 하게 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여성의 건강과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아이를 직접 낳아 키우겠다는 ‘미스맘’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부모와 함께 살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미스맘’이란
결혼 없는 아이를 원하는 ‘자발적 비혼모’를 일컫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직접 낳거나 입양해 키우는 여성들이다.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미혼모나,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자녀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과 구별해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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