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8.23 10:21 수정 : 2016.08.23 13:04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ㄱ씨를 만난 것은 2012년 내가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들어온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을 때였다. 그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중장년인 나이인데도 백발이 성성해 노인처럼 보였다. 아내는 당뇨가 심했다. 일을 못 하고 누워 지냈다. 무엇보다 ㄱ씨는 눈에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술을 빨리 해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일을 하며 아내를 간병해야 했기에 기약 없이 수술을 미루고 있었다.

사건 당일, ㄱ씨는 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서두르지 않으면 실명된다’는 최종 선고를 들었다. 그날 ㄱ씨는 대형마트에 가서 무엇에 홀린 것처럼 담배 보루를 담아 카트를 밀고 나오려다가 도난방지 알람이 울려 적발되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범행이었다. ㄱ씨는 나중에야 ‘백내장 수술비를 마련해서 빨리 수술을 해야만 아내를 부양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훔치려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가혹했다. ㄱ씨는 이미 절도 전과가 여러 차례 있었고, 작은 절도를 반복해 교도소에서 실형을 복역했었다. 검찰은 ㄱ씨를 상습절도죄(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했다. 당시 그 규정은 피고인을 6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아무런 물질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대형마트 쪽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선처를 요구했다. 하지만 긴 징역형을 피할 길이 없었다.

우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형벌을 선고받는 사람을 ‘현대판 장발장’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상습절도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매우 높은 형이 내려진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절도를 반복하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중형에 처해야 할까? 우리 법은 유독 소유권을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변호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여러 번의 절도 전과, 자백, 높은 법정형… 법률가의 관점에서 보면 6년의 징역을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사건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배심원들에게 상습절도가 아니라고 우겨보기로 하고, 절도로만 처벌을 해달라고 주장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비법률적인 변론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국민참여재판 당일 우리 변호인단은 배심원을 선정하며, 되도록 인생사를 이해할 만한 중년 이상의 배심원으로 구성되도록 노력했다.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고, 이처럼 ㄱ씨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저지른 일이라 상습절도가 아닌 일반절도로만 처벌되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피고인에게도 미리엘 신부가 필요하다며. 결과는 뜻밖에도 징역 1년6개월. 상습 부분 무죄, 절도 유죄로 검찰 구형보다 4년6개월 감경된 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ㄱ씨에게 적용되었던 특가법 조문은 그 뒤 2015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단했다. 국회는 법을 개정해 ㄱ씨와 같은 경우, 6년 이상의 징역형에서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것으로 형량을 3년 낮췄다.

사실 위와 같은 사건은 검찰 단계에서 상습절도죄가 아닌 절도로 기소했다면 좋았을 사건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피고인의 사정을 잘 들어보고 대형마트에서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ㄱ씨가 실형을 복역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어찌한단 말인가. ㄱ씨의 범행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없지 않았나. 우리가 검찰에 기소독점권을 주고, 기소해야 하는 사건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한 것(기소편의주의)은 검찰이 다양한 사람들의 신산스런 인생사를 이해하고 법을 적용해주리라 믿어서인 것 아니었나.

조수진/변호사
위헌 판결 이후 형량은 낮추어졌지만, 지금도 장발장들은 계속 생겨난다. 아내가 임신 중인데 출산 준비를 할 수 없어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다며 사기를 벌인 젊은 가장. 출소 후 배가 고파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돈을 못 내 출소 일주일 만에 다시 잡혀온 재소자. 장발장들을 엄벌에 처하는 것이 과연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길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때론 엄한 법적용보단 미리엘 신부가 내민 것 같은 따뜻한 손길이 아닐까.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밥&법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