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5 20:18
수정 : 2016.09.06 09:30
동네 변호사가 간다
얼마 전 형사사건 기록을 보다가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피고인이 집 안에서 한 번, 집 밖에서 한 번,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게 욕설했다고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집 밖에서 욕설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집 안에서는 욕설하지 않았다고 줄곧 부인해왔다. 그런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니 피고인이 집 안에서도 욕설을 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
피고인을 만나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물었다. 알고 보니 집 밖에서 욕설했다고 인정한 것을 집 안에서도 한 것처럼 피의자신문조서가 작성된 것이었다. 피고인에게 어쩌다 진술이 잘못 기재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물었다. 원래 조서 작성이 끝나면 조서 열람을 하게 되어 있다. 피고인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 조서를 이렇게 적어놓을 줄 몰랐죠.”
형사사건에 피의자로 연루된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는 절차가 피의자 신문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많다.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허위, 왜곡 기재형’이다.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적어놓는 경우가 있고, 피의자가 한 말을 교묘하게 비틀어 이상하게 적어놓는 경우도 있다. 앞의 사례는 그 한 단면이다. 피의자를 신문할 때 경찰이나 검사는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조서에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의 쟁점에 관하여 묻고 답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그것을 글로 정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자기가 이해한 대로 적는다. 글로 정리된 것이 피의자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구조다.
둘째 유형은 ‘원하는 답변 요구형’이다. 이런 요구의 형태는 은근한 설득과 회유, 모욕적 질문 등 다양하다. 심한 경우 고성에 반말을 하는 것도 목격한 적이 있다. 언젠가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수사에 입회했는데, 다른 사건을 맡은 옆자리 수사관이 피의자를 앉혀놓고는 거의 반말과 욕설로 피의자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보다 못해 검사에게 한마디 할까 하는 충동을 느꼈지만 ‘내 사건도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간신히 참았다.
가뜩이나 피의자는 자신이 의심을 받는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나 수사관, 경찰로부터 모욕이나 강박을 받으면 하고 싶은 말을 도저히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으면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피의자 신문이 필요하긴 하다.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스스로 해명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현행과 같은 방식대로 할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증거 재판주의’라는 대원칙상 피의자에 대한 유죄 입증은 피의자 본인 진술 외의 증거로 하는 것에 맞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자백 진술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뒤따른다. 앞서 본 진술의 왜곡이나 강박, 강요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필연적 산물이다. 변호인 입회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잘 이용되지 못하고 있거니와, 입회 변호사가 있어도 진술의 왜곡과 진술 강요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피의자 신문에 관하여 제도 개선책이 여럿 나와 있다. 문제는 수사기관의 자세다. 충분히 물어라! 다만, 피의자가 부인하면 부인하는 취지를 정확히 조서에 적고 증거로써 피의자의 부인이 왜 거짓인지를 밝히면 된다. 그러지 않고 심증만 가지고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니 은밀하게 회유하고, 언성이 높아지고, 모욕과 강압이 횡행한다. 피의자 진술을 왜곡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볼 문제다. 이러한 수사기관의 태도는 스스로가 피의자의 유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의 부족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나 경찰이 최일선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접하는 피의자들의 인권조차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권 보장’은 그야말로 하나 마나 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광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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