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아직 학위를 받지 않은 대학원생이 교수와의 관계에서 철저히 ‘을’인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졸업과 취업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교수의 지시를 대학원생이 거부하는 건, ‘그 바닥을 떠날 각오’ 정도는 해야 가능한 일이다. 어렵사리 유학을 갔다가 지도교수와의 갈등 때문에 몇 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사례가 내 주변에도 여럿인 걸 보면, 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직장인이면서 박사과정에 다니던 ㄱ씨도 지도교수와의 문제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2009년 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에 입학한 ㄱ씨는 다음해인 2010년 규정에 따라 논문 지도교수를 배정받을 요건을 갖추었는데도, 학과로부터 지도교수 지정을 거절당했다. 석사과정 때 ㄱ씨를 지도했던 ㄴ교수와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과장이던 ㄴ교수는 ㄱ씨의 박사논문 지도를 맡지 않겠다고 했고, 학과의 다른 교수들도 ㄴ교수와 불편해지는 걸 감수해가면서 ㄱ씨의 지도교수가 되려 하지 않았다. 미운 오리가 되어버린 ㄱ씨는 대학원 규정에 따라 외부학교 교수를 논문 지도교수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학교는 ‘학과 교수들이 반대한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민원을 제기했으나 “학교에서 처리할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도교수가 없어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던 ㄱ씨는 입학한 지 7년째가 되던 지난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하지만 학교에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애매했다. 학교는 ㄱ씨에게 명시적으로 불이익한 처분을 한 것이 없었고, 단지 박사논문 지도교수를 정해주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가장 급한 건, ㄱ씨가 재학 기간 초과로 학교에서 제적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대부분의 학교는 학칙에 입학한 뒤 일정 기간 안에 학위를 받지 못하면 제적 처리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2009년 박사과정에 들어온 ㄱ씨의 재학 연한은 2018년 2학기였다. 당장 지도교수를 지정받더라도 2~3년 안에 논문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법원에 ㄱ씨의 박사과정 재학 기간 진행을 중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재학 기간 10년 중 7년이 지날 때까지 논문 지도교수가 선정되지 않아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었고 지금도 재학 기간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ㄱ씨는 제적 처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ㄱ씨가 대학원생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학교는 ㄱ씨가 학위를 수여받기 위하여 필요한 논문 지도교수를 선정해줄 의무가 여전히 있다”며 ㄱ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곧바로 본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학교가 ㄱ씨를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면 무사히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학교는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ㄱ씨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외부인사를 지도교수로 선정하는 절차를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학교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소장이 접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ㄱ씨는 학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다. ‘원하는 대로 외부인사를 지도교수로 위촉할 테니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소송을 해도 승산이 없다고 학교가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학생이 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아 등록금을 내면 학교와 일종의 ‘재학 계약’ 관계가 된다. 학생은 제때 등록금을 내면서 학칙과 규정을 지킬 의무를 지고, 학교는 학생이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학교 쪽에 학생이 권리를 주장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학생은 ‘교수에게 찍힐까 봐’ 불만을 얘기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가는 건 학교를 떠날 각오 정도는 해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정민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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