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19 20:07
수정 : 2016.09.19 21:04
동네변호사가 간다
강정마을·세월호 집회 상대 거액 구상금 소송
비판세력 고통주려는 ‘전략적 봉쇄소송’ 남발
민사소송을 하는 이유는 달리 법적 권리를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사소송의 목적은 당연히 ‘승소’다. 다만 승소가 확정되려면 몇 년에 걸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하기에, 소송을 하려는 사람은 그 전에 승소 가능성, 시간, 비용, 다른 방법의 가능성을 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송의 목적이 ‘승소’가 아닌 다른 것,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거나 ‘본보기를 보이는 것’인 경우도 있다. 상대방을 괴롭혀서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소송을 악용하는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 사이의 감정싸움이라면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나 큰 기업 등 사회적 강자가 자신의 업무나 시책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해 고통을 주고 의사표현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미국 등에서 오래전부터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이라고 하여 법률이나 판례로 규제되어 왔던 것이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올해 초 소송가액 34억원이 넘는 소송의 공동피고가 되었다. 소송을 건 쪽은 국가다. 국가는 주민 등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행위로 공사가 지연되어 건설사인 삼성물산에 추가 공사비용을 지급하였다면서, 마을 주민 등 개인 116명과 5개 단체를 골라서 거액의 민사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게다가 국가는 앞으로 소송액수를 늘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공사 지연의 원인이 무엇인지, 공사 지연으로 어떤 손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앞으로 하나하나 살펴볼 문제다. 그에 앞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이런 민사소송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정부의 강정 구상금 청구소송은 ‘전략적 봉쇄소송’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제주 강정에 해군기지를 짓는 정부 시책의 당부는 공적 영역에서 논의될 사안이고 지역 주민들이 의견을 밝히는 것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 행사였다. 그런데 정부는 공사에 반대했던 주민과 단체를 일일이 골라내서 이들을 상대로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거액의 민사소송 ‘폭탄’을 던진 것이다.
이미 강정의 해군기지 공사는 끝났고 많은 주민들은 집회 등으로 인하여 형사처벌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또다시 주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앞으로 다시는 ‘감히’ 정부 시책을 막아서지 말라는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 아닐까. 평범한 주민들이 두꺼운 소장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두려움을 느꼈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문제점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공적 논쟁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을 좁은 법정으로 이동시켜 공론을 위한 공중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강정 말고도 이런 괴롭히기 소송이 빈번해지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집회나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최했던 개인과 단체를 상대로 수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힘 있는 단체나 공인이 온라인상 의사표현을 한 개인들을 묶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그러한 예다.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강자의 소권 남용은 사법 정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에, 법원은 이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최근 대법원도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고 김재형 대법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소송을 통해서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억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루로서, 법원의 진지한 접근을 촉구한다.
송상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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