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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8 05:00 수정 : 2016.11.21 20:14

[밥&법]동네변호사가 간다

언젠가 한 이혼소장을 읽으면서, ‘이 두 사람은 도대체 왜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건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의 소장이었는데. 상대방을 마치 악마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으슥한 곳으로 불러 배를 만지며 성추행을 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그런 소장을 받아들면 이쪽이 보내는 서면 역시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강도는 점점 더 세진다. 이 소장을 본 남성 의뢰인은 경악을 하면서 ‘아내를 무슨 죄목으로라도 형사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 서면을 받아든 상대방이 거기서 그칠 리 만무하다. 오가는 서면 공방 속에서 두 사람은 세상에서 더없는 악인이 되어간다. 이혼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도 심각한 터에 이러한 서면 공방은 양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부부관계가 파탄나서 가정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볼 경우 법원은 이혼을 선언하게 된다. 여기서 그 파탄의 사정만 존재하면 이혼을 허가하는 입장(파탄주의)과 파탄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이혼 청구를 불허하는 입장(유책주의)이 있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그간 유책주의의 입장을 유지하다가 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대법관 13명이 치열하게 법리다툼을 한 끝에 2015년 9월15일 7:6 한표 차이로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판결이 타당한지는 차치하고, 어쨌든 유책주의에 따르면 내가 아닌 상대에게 부부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법원이 받아들여야만 이혼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소송 과정에서 좀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가령, 갑돌이와 을순이가 사랑하여 결혼했다가 아이 하나를 두었다고 해보자.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을 고백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여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결혼생활의 전 과정을 복기하면 상대방 때문에 행복하고 설레고 기뻤던 순간이 한번도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혼 소장에서는 상대방을 악마화하기 십상이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책임의 상당 부분은 변호사에게 있다고 본다. 의뢰인은 이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상대에 대하여 강한 감정적 비난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비난을 전혀 거르지 않고 그대로 서면에 옮겨서야 되겠는가? 의뢰인의 말에 합당한 소명자료가 있다면 그런 주장을 개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명자료가 없다면 의뢰인의 말이 상식에 부합하는지 요모조모 묻고 따져보아야 한다.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허위사실을 만들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부풀린 것은 아닌지, 혹은 맥락을 거세하여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은 아닌지 비판적 점검이 필요하다.

물론 재산관계 소송에 비추어 이혼소송에서 증거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속성상 재산관계 소송은 계약서 등 여러 증빙자료가 남아 있지만, 혼인관계가 어디 그런가? 말다툼 한번 했다고, 혹은 상대로부터 폭행 한번 당했다고 매번 기록하고 진단서 끊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증거도 없이 악마적 주장을 남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혼에 임하는 당사자들 역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악연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혼 후에도 얼굴을 맞대고 볼 일들이 있게 된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두 사람이야 인연이 거기까지여서 부부관계를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아이에 대하여 아빠와 엄마로서의 책임까지 종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혼 과정에서 상대의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을 묻는 것에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

하루 네 쌍이 결혼하고 세 쌍이 이혼하는 시대다. 이혼을 권장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혼 과정에서 상처를 최소화하고 서둘러 그 과정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만한 합의를 통하여 이혼에 도달하는 것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소송으로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상대를 악마화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것, ‘좋은 이혼’의 시작이다.

이광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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