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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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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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4일 오후 3시30분 전남 나주시 남평읍 영산강 지류인 드들강에서 여고생 박아무개(17·광주 남구)양이 알몸 상태로 물속에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주검에는 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 몸 안에는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나왔다. 시료에서 유전자정보(DNA)를 확보한 경찰은 박양 동네와 현장 주변의 인물 200여명의 디엔에이를 확보해 대조했다. 박양은 전날 휴대전화를 잃어버렸고, 당시엔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도 없었다. 목격자도, 유류품도 찾지 못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은 경찰은 한 달 만에 수사를 중단했다. 초동 수사에 실패하면서 이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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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새벽 강변에서 사라진 ‘그놈’은 어디에
박양은 이날 새벽 1시 광주 남구의 집을 나섰고, 14시간 반이 지난 뒤 16㎞ 떨어진 드들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집 부근에서 새벽 3시30분 두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이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박양을 본 사람은 없었다. 왜 새벽에 혼자 집을 나섰는지, 어떻게 드들강까지 갔는지 등 의혹들은 풀리지 않았다.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은 10년 뒤 ‘DNA법’이 제정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강력범의 디엔에이를 등록하던 대검찰청은 2012년 9월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이 사건의 디엔에이가 복역 중인 김아무개(40·사건 당시 24살)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는 2003년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전당포 주인 등 2명의 강도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물증이 나왔으니 순순히 범행을 털어놓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씨는 완강하게 결백을 주장했다. 김씨는 “박양을 알지 못하고, 성폭행을 하지도, 죽이지도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다. 자신의 디엔에이가 검출된 경위를 두고는 “오랜 시간이 흘러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성관계를 맺은 많은 여성 중 한 명인가 보다”고 피해갔다. 박양의 마지막 목격자도 “당시 봤던 사람이 김씨가 아닌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사건이 다시 벽에 부딪혔다. 검찰은 2년 뒤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했다. 부실한 수사 탓이었다. 황당해진 가족들이 ‘한을 풀어달라’고 각계에 탄원을 했다. 이 사건이 방송을 타면서 수사기관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15년 3월 재수사가 본격화하자 공소시효(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가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당시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어서 2016년 2월4일이 지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었다. 마침 국회가 흉포화하는 강력사건을 막기 위해 ‘태완이법’을 통과시키면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시간을 번 수사당국은 법의학 전문가 감정, 김씨가 수감된 감방 압수수색, 재소자 탐문 등으로 추가 증거를 쌓았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지난해 8월 김씨를 성폭력범죄 처벌법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애초 공소시효인 15년을 6개월 지난 시점이었다.
알몸으로 숨진채 발견된 17살
성폭행 당하고 목졸린 흔적
경찰은 정액서 DNA 확보했지만
초동수사 부실 탓 미제사건으로
10년뒤 DNA법 제정 일치범 확인
그러나 용의자는 ‘나는 결백하다’
2년뒤 불기소처분에 여론 들끓어
재수사 이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그 와중에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생리혈·정액이 서로 섞이지 않아
‘성폭행 직후 살해’ 과학적 뒷받침
용의자 알리바이 사진도 조작 의심
법원은 증거 대부분 효력 인정해
16년만에 무기징역 선고
하지만 용의자는 억울하단다
변호인 “살인의 직접 증거는 없어”
■ 섞이지 않는 혈액…성폭행·살인 동시성에 주목한 수사당국
이 사건의 수사에는 경찰이 검찰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경찰은 잇따라 기소 의견을 표명했고, 이례적으로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을 재수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광주지검은 지난해 3월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꾸렸다. 검찰은 결정적 증거인 김씨의 디엔에이를 박양 몸 안에서 확보한 만큼 성폭행과 살인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 공을 들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수사의 속도는 더뎠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검찰은 살해 장소를 드들강으로 추정했다. 박양의 사인이 익사였고, 폐 속에서 플랑크톤이 나왔다. 박양은 강변에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 있었다. 범행 시간은 마지막 목격자 증언과 차량 이동, 주검의 상태 등을 고려해 그날 새벽 3시54분부터 해 뜨기 전인 오전 7시29분 사이로 특정했다.
김씨가 박양의 집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살았지만, 두 사람이 통화하거나 채팅한 적이 없어 수사 선상에서 빠졌던 허점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같은 오락실을 다녀 동선이 겹칠 수 있다는 정황도 확보했다.
사건 사흘 전 박양의 일기장에 엠(M)이라는 표시를 해둔 기록도 새롭게 나왔다. M은 매직(Magic)의 약자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생리일(신비로운 날)을 뜻하는 은어다. 이후 현장 사진을 재조사해 박양의 생리혈과 범인의 정액이 서로 섞이지 않았다는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법의학 전문가는 박양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섞일 수밖에 없는 두 액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은 성폭행과 살인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양이 성폭행 직후 몸을 움직이거나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살해됐다는 추론이다. ‘성폭행자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과학적 뒷받침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또 김씨가 수감된 감방을 압수수색하고, 동료 재소자 350여명을 탐문했다. 감방에선 사건 당일 김씨가 전남 강진 외가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7장을 압수했다. 검찰은 이 사진들이 범행 뒤 알리바이를 대기 위해 일부러 행적을 조작한 것으로 봤다. 김씨는 면회 때 친척에게 사진이 자신의 무고를 밝혀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소자 일부한테는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는 진술을 들었다.
검찰은 이날 김씨가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뒤 곧바로 여자친구를 불러 강진 외가로 가서 사진을 찍는 등 용의주도하게 움직였음을 포착했다. 당시 절도 전과 7범이던 김씨는 이어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개 12마리를 훔쳐 수감되고, 자신의 승용차를 팔아치우는 등 수사망을 피했다. 이런 정황과 진술은 재판 과정에서 유의미한 증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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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나주 드들강 살인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11일 오전 피해자 가족이 판결 뒤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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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의미한 정황증거 근거로 유죄 인정한 재판부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강영훈)은 지난 11일 무기수인 김씨에게 강간 등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년 동안 위치추적 전자장치도 달아야 한다고 명령했다. 김씨는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된 채 사실상 종신형을 살게 됐다. 이 판결은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이후 처음으로 나온 유죄 판결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DNA법’과 ‘태완이법’의 시행으로 현장에서 확보한 디엔에이 이외에는 다른 증거가 없는 사건들이 더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을 효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폭행과 살인을 입증할 직접 증거는 제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한 증명력이 있으면 간접 증거만으로도 유죄 인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씨는 범행 뒤 주검에서 옷을 모두 벗겨 증거를 인멸했고, 수사에 대비해 당시의 행적을 조작하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디엔에이 정보 외에는 목격자와 유류품 등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성폭행과 살인의 시점이 밀접하다”는 법의학적 견해를 받아들였다. 김씨의 디엔에이가 나왔다는 사실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고, 성폭행자와 살인자가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수용한 것이다.
■ 변호인 “살인의 직접 증거는 여전히 없다”
김씨는 1심 유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디엔에이가 자신의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성폭행뿐 아니라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여전히 “박양 몸속에서 내 디엔에이가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강제적인 성관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도 “살인의 직접 증거는 아직 없다. 유죄 판단이 일리는 있지만 정황 증거를 근거로 내려진 만큼 상급심에서 뒤집힐 수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성폭행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수사와 판결이 이뤄졌다. 전제가 틀렸으니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외가에서 찍은 사진 7장에 대해서도 “갖고 있던 사진 200장 중 일부일 뿐이다. 수사에 대비해 찍어뒀다 해도 사진의 용도는 ‘알리바이’(현장 부재)를 깨는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현장 사진이 아닌데도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무리”라고 이견을 보였다. 사진을 찾아낸 시점도 재수사가 진행 중인 2015년 10월이었고, 김씨가 변호인이나 재판부에 제출하려다 검찰에 압수당했다고 설명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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