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30 20:32
수정 : 2017.01.30 21:04
[밥&법] 동네변호사가 간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진실 발견을 100% 보장할까. ‘시에스아이(CSI) 효과’라는 것이 있다. 2000년에 시작되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유명 범죄수사 드라마 시에스아이가 방영된 이후, 배심원들이 수사와 재판에 최첨단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기대하고 디엔에이(DNA)와 같은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재판 결과를 의심하는 현상이다.
드라마를 보면 권총을 든 요원들이 현장에 출동해서 범행 장소인 차량에서 한 올의 실을 채취해서 실험실로 가져온 뒤 그 섬유를 분석기에 넣고 화학 약품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곧바로 그 옷이 언제 어느 상점에서 판매된 것인지를 밝혀낸다. 그리고 그 상점의 시시티브이에 녹화된 화면의 작은 귀퉁이를 확대하고 또 확대해서 마침내 범인의 얼굴을 찾아내고 다시 컴퓨터에 입력하면 현재 그가 사는 주소가 나온다. 사건 클리어.
그러나 실제 과학수사와 재판의 현실은 푸른 조명이 비추는 텔레비전 속 분석실과 다르다. 현실의 범죄 현장은 증거가 그렇게 잘 남아 있지도 않거니와 수사하는 경찰은 요원들처럼 법의학 지식이 많지 않고, 채취된 증거마저 잘 보관되지 않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시티브이(CCTV)는 녹화 용량이 작아 자동으로 일정 기간 단위로 덮어 녹화되기 때문에 동영상은 이미 지워져 있기 십상이다. 거짓말 탐지기는 특정 질문에 심장 박동수와 땀 분비 변화 등 신체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라서 강심장인 사람은 태연히 거짓말을 하면서도 진실 반응을 보인다. 혈액 감정이나 동영상 분석을 의뢰하면 몇주는 걸려야 결과가 돌아온다. 과학적 방법으로 범죄 분석이 3일이면 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드라마는 제쳐두고, 현실에서 우리나라 과학수사는 외국에 견줘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수사가 과연 진실 발견을 100% 보장할까는 여전히 의문이다. ㅁ씨는 직장에 출근했다가 검찰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수사를 받게 되었다. 검찰은 ㅁ씨를 3년 전 여름 발생했던 미제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몰아갔다. ㅁ씨의 디엔에이가 3년 전 사건 현장 증거인 칼에서 발견된 것이다. 황당한 ㅁ씨는 무죄를 주장했다.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던 사람은 그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동생은 다른 절도 사건을 저질러 최근 구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동생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검사해 보니 과거 해결되지 않았던 강도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 나온 것과 일치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일란성 쌍둥이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수정체가 분열되어 두 명의 태아가 되는 것이어서 디엔에이는 같고 자라면서 형성되는 지문은 서로 다르다. 동생을 심문하자 그는 “나는 3년 전 여름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상태라 강도 범행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고 아마 쌍둥이인 내 형이 범인일 것이고 그 디엔에이도 형 것이다”라고 유력한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병원에 조회해 보니 동생의 다리가 그 시기 골절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결과 ㅁ씨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얼핏 첨단 수사 기법이 사용된 매우 과학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 하나의 증거가 ㅁ씨를 범인으로 지목했을 뿐이다. 10년 뒤에 일란성 쌍둥이의 디엔에이를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과학수사 기법이 나온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알고 보니 동생이 아픈 다리로 담을 넘었다면?
형사재판 원칙으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하는 수사는 그것이 과학수사라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시작해서 검사가 유죄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밝혀야만 판사는 유죄 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매시간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이 미래 과학수사의 지형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데이터 분석물에 대한 최종 판단자는 결국 인간이다. 과학수사를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다.
조수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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