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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4 10:15 수정 : 2017.03.14 14:10

의정부경전철이 지난 10일 경기도 의정부역 인근 도심 빌딩숲 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박경만 기자

[밥&법]
‘애물단지’ 전락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 3가지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에 파산 신청한 경기도 의정부경전철의 실패 원인은 민간사업자의 탐욕과 무능한 지방자치단체, 무책임한 정부로 요약할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사업비와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 수요예측을 과도하게 부풀렸고, 의정부시는 경전철과 민자사업이 뭔지도 잘 모른 채 민간사업자와 무책임한 정부를 믿고 무리하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의정부경전철은 운행한 지 4년 반 만에 220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30억원 이상을 경전철 경로무임 손실금 등에 쏟아붓고 있는 의정부시는 협약 해지 시 2천억원이 넘는 해지시지급금까지 물어줘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의정부시와 사업자의 설명, 의정부시의회 속기록, 감사원의 ‘경전철 건설 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 보고서(2013) 등을 중심으로 의정부경전철의 탄생부터 파산 신청까지 ‘실패의 시간’을 재구성해본다.

■ 의정부경전철 탄생까지 막전막후 ‘수도권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의정부경전철의 탄생 배경을 알기 위해선 27년 전인 1990년으로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려야 한다. 당시 지하철 7호선 건설을 위해 차량기지가 필요한 서울시는 의정부시 장암동에 도봉차량기지를 설치해줄 것을 요청한다.

당시 의정부시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1991년 차량기지 설치 사업과 관련한 ‘도시계획 결정입안권’을 서울시에 위임해버린다. 의정부시의회가 ‘도봉차량기지는 서울시에 설치함이 타당하다’며 반대의견을 내고, 의정부시는 지하철 7호선을 의정부 북부역(현 가능역)까지 노선 연장을 요구했지만 이미 주도권을 틀어쥔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1991년 11월 도시계획결정 권한을 가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장암동 25만8천㎡(7만8천평)에 차량기지 설치를 확정한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이라 막강한 힘을 가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소도시를 힘으로 누른 것이다.

의정부시의 거듭된 7호선 연장 요구로 서울시와의 갈등이 격화되자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장은 1993년 2월 의정부시장을 만나 대안으로 경량철도 설치를 제안한다. 의정부경전철 사업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경전철은 기존 지하철(중전철)과 달리 ‘가벼운 전철’이란 뜻이다. 경전철(전동차 2~4량 연결)은 기존 지하철(전동차 8~10량 연결)에 견줘 수송 능력은 떨어지지만, 건설·운영비가 싸다. 현재 운행하는 의정부경전철은 전동차 2량짜리다.

지하철 7호선 연장 불발되자 ‘잘못된 선택’
사업자·지자체 ‘동상이몽’ 엉터리 협약 통과
의정부시 MRG 적용안돼 협약 수정에 소극

활성화 정책에도 이용객 협약수요의 30% 그쳐
누적적자 2200억원 사업자 결국 파산신청
사업 해지땐 시가 수천억대 투자금 물어줄 판

시-사업자 ‘네탓 공방’ 애꿎은 시민만 피해
시 “민자사업 모르고 정부 믿고 추진했다”

1993년 교통부 중재로 양쪽은 7호선 노선 연장에 따른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로 하고, 경기도가 서울시의 원안대로 도시계획시설결정을 내려 차량기지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교통개발연구원이 실시한 지하철 7호선 노선 연장 타당성 용역에서도 ‘노선연장과 상응되는 경량철도는 타당성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1994~95년 교통개발연구원의 ‘서울지하철 7호선 연계 의정부경전철 도입 건설운영기본계획’ 용역에 이어, 1996년 3월 재정경제원의 민자유치대상사업에 의정부경전철이 선정된다. 1998년 11월 건설교통부는 도봉산역~시청~시외버스터미널~송산동에 이르는 노선 14.27㎞와 총사업비 4489억원을 담은 도시철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2002년 포스코건설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으나 엘지건설(현 지에스건설)컨소시엄이 무효소송을 내 2004년 지에스건설컨소시엄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었다.

경기도 의정부시 새마을협의회와 통장협의회 회원 40여명이 지난 6일 서울 지에스건설 본사 앞에서 경전철 파산 신청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정부시 제공

경기도 의정부시민들이 지난달 경전철 사업자인 지에스건설 사옥 앞에서 경전철 파산 신청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정부시 제공

경기도 의정부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성향 정당 회원들이 지난 8일 의정부시청에서 안병용 시장의 의정부경전철 시민모임에 대한 탄압과 고소 행위를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의정부경전철 시민모임 제공
지에스건설컨소시엄은 2005년 문제의 ‘수요예측보고서’를 제출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의정부시의 검토를 거쳐 2006년 4월 ‘의정부경전철민간투자시설사업 실시협약’이 체결됐다. 2007년 공사가 시작된 의정부경전철은 ‘전면 재검토’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안병용 의정부시장의 취임 2주년에 맞춰 2012년 7월1일 개통됐다.

■ 엉터리 수요 예측과 독이 된 MRG 저지 규정 의정부경전철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예측수요가 실제 이용수요보다 과다하게 산정되었다는 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분석한 의정부경전철의 수요 과다예측 원인을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민간사업자는 경전철 수요 예측을 위한 수단분담률(경전철을 교통수단으로 선택하는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경전철 특성을 반영한 수단선택모형을 적용해야 하는데도, 국토부 ‘교통시설투자평가지침’ 등에 경전철 수단분담모형이 없다는 이유로 임의로 개발한 신뢰성 낮은 모형을 사용했다.

사업자는 의정부경전철 통행시간을 산정하면서 1차 역세권(0~500m)과 2차 역세권(500~1000m)에서 경전철역까지 접근시간을 5분→2.5분, 10분→5분으로 각각 절반으로 줄였다. 또 대기시간(1.5분)과 경전철역에서 목적지 이동시간(2.5~5분) 등을 누락해 적정한 경전철 수단분담률인 1.6~3.9%보다 높은 9.6%로 최대 8%포인트 과다 산정했다. 잘못된 수단선택모형으로 애초 버스 수요가 경전철로 7만1109건 통행이 전환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 전환량은 예측수요의 66.7%인 4만7572건에 그쳤다. 사업자는 이어 통행량 산정 시 한국교통연구원의 국가교통데이터베이스(2003) 자료를 사용해야 하는데도 의정부시의 가구통행실태조사(1999) 자료를 사용해 통행량을 31.2%포인트나 과다 산정했다.

민간사업자의 수요예측 보고서를 검토한 한국개발연구원과 의정부시는 민간사업자가 임의로 개발해 검증되지 않은 모형인데도 정부의 표준지침에 경전철 효용함수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과다 추정된 수요를 근거로 경전철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는데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승인해준 셈이다. 정부도 전국 지자체들이 경전철에 열을 올리는 상황인데도 경전철 수단선택모형을 갖추지 않아 수요 과다 예측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와 관련해 의정부시 관계자는 “당시엔 민자 사업이 생소해 시가 검증할 만한 능력이 없었고 정부기관을 믿고 따랐다”고 말했다.

민간사업자와 의정부시는 엉터리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실제 이용객이 예측수요보다 50% 미만일 경우 의정부시가 사업자에게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50%가 넘어설 경우 예측수요의 80%까지 차액을 보전하는 내용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협약을 맺었다.

이러한 ‘엠아르지 50% 저지 규정’은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이용수요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5월부터 실시협약에 규정하도록 한 것이다. 의정부시는 경전철 이용객이 예측수요의 50%에 크게 못 미쳐 ‘엠아르지 50% 저지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 용인이나 부산김해경전철처럼 당장 큰 액수의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의정부경전철 이용객은 2012년 협약수요(7만9049명)의 15%인 1만2092명에 그쳤다.

민간사업자를 지켜만 보던 시는 얼마 못 가서 사업자의 적자가 수천억원으로 불어나자 파산을 걱정해야 했다. 사업 포기 시 시가 사업자의 투자 비용을 물어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경전철 활성화 정책으로 이용객이 예측수요의 50%가 넘을 경우 엠아르지에 따른 거액의 재정 지원을 해야 해 시는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지게 됐다.

결국 논란 끝에 감사원의 권고로 2014년 경전철 활성화를 위해 연 3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노인무임제와 통합환승할인을 도입했지만 이용률은 30% 선을 맴돌았다.

민간사업자는 누적적자가 2200억원에 이르자, 사업 재구조화 방안으로 사업 해지 시 받기로 한 환급금(2015년 기준 2385억원)의 90%에 이자를 보탠 3687억원을 25년간 분할해 매년 145억원을 달라고 의정부시에 제안했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환승할인과 경로 무임승차 손실금까지 더하면 연간 2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사업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50억원+α를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사업자의 파산 신청으로 의정부시는 해지시지급금이라는 재정폭탄을 떠안게 됐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경전철 실패, 시민만 피해 개통 뒤 잇따른 고장도 시민들의 경전철 외면을 부채질했다. 천신만고 끝에 개통했지만 눈만 내리면 멈춰 서는 등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고장철’이라는 수식어까지 나붙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의정부경전철은 ‘외부온도 -20~+40도, 강설량 25㎝/일’ 조건에서 상시 운영 가능하도록 눈을 녹이는 융설 설비를 설계·시공해야 했지만 사업자는 외부온도 -2.95도와 강설량 시간당 1㎝만 처리할 수 있도록 시공했다. 의정부시는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준공 승인을 해줬고, 의정부경전철은 그해 겨울 12월에만 5차례나 급전장애 사고를 냈다.

경기도 의정부지역 시민단체인 ‘의정부경전철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의 한 회원이 지난달 의정부3동 주민센터 앞에서 의정부경전철 실패 책임 규명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정부경전철 시민모임 제공

경기도 의정부지역 시민단체인 ‘의정부경전철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모임’의 한 회원이 지난달 22일 의정부역 앞에서 의정부경전철 실패 책임 규명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정부경전철 시민모임 제공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간사업자의 파산 신청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의정부시 제공
사업자의 파산 신청 이후 양쪽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며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의정부시는 “사업자가 적자를 부풀리고 파산 절차를 남용해 사회적인 책임을 저버렸다”고 포문을 열었다. 안병용 시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해배상청구 등 30년 운영의 공적인 의무를 저버린 사업자의 법적인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사업자는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에 낸 의견서에서 “의정부시는 사업 시행자가 감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사업 재구조화 요청을 거부한 채 시간 지연에만 몰두했다”며 책임을 의정부시에 돌렸다. 팽정광 의정부경전철 사장은 “사업 재구조화는 시 재정을 지원받아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손실이 나더라도 경전철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 주장했다.

시의 경전철 정책을 비판해온 의정부경전철 시민모임은 “실패한 민자사업자에게 해지시지급금을 물어줘서는 안 된다. 해지금을 물어주더라도 건설비를 포함한 총사업비를 공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 이의환 정책국장은 “경전철 사업이 실패했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실패 대가를 시민들이 떠안게 됐다. 사업을 추진한 김문원 전 시장과 안병용 시장, 사업에 관여한 전·현직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시민 앞에 사죄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상 과정에서 잘못된 협약 수정의 여지도 있었지만 안 시장은 한 번도 시민의 대화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업자와 협상놀음만 벌이다 파국을 맞았다. 여러 차례 비용보전 방식의 사업 재구조화나 시가 직영하는 방안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면 의정부경전철은 민간투자사업 가운데 중도 파산하는 첫 사례가 된다. 의정부시는 향후 경전철 운영 방안으로 시 직영화, 대체사업자 선정 등을 검토 중이다.

의정부/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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