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19 16:51
수정 : 2017.06.19 21:09
[동네변호사가 간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생각해 보라. 그 속에서 너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무한한 시간을 생각해 보라. 그 속에서 너에게 할당된 시간은 얼마나 짧은 순간에 불과한가. 요즘 사건과 씨름하며 힘이 들 때면 조용히 앉아 되새겨 보는 명상록이다. 무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솔로몬처럼 완벽하게 법을 적용해서 1원에 대해서라도 눈물 쏙 빼도록 정확해야 할 것만 같지만 결국 법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억울한 사람에게는 법의 저울을 살짝 기울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변호인은 대리인이지만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이 된다. 그중에서도 세금 사건은 유독 다른 법률 적용보다 힘이 들 때가 많다. 돈 문제이기 때문이지 싶다. 나라에 필요한 돈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네가 안 낸다면 결국 그만큼 내가 더 내야 한다. 한명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면 결국 반드시 다른 사람이 내게 되어 있다. 공동체의 근간인 세금을 다루는 소송에서 판사는 더욱 냉정해지기 마련이다.
명상록에서도 결국은 짧은 인생, 개인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변호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세금 사건이야말로 오히려 비법률적인 인간적 고려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돈 문제니까 되레 얼마나 사연이 많은가.
ㅂ씨의 경우를 살펴보자. 싱글 직장인인 ㅂ씨는 11층 자택에 장애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그동안은 같은 아파트 한층 아래 10층에 살고 있는 결혼한 언니네가 모셔 왔지만 형편이 안 되어 가족회의를 한 결과였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자주 다니는 일은 쉽지 않기에 자가용이 필수적이다. 장애인이 취득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배기량, 조건 등에 따라서 지방세인 취득·등록세를 감면해주는 혜택이 있다기에 ㅂ씨는 없는 형편에 돈을 마련하여 어머니와 공동명의로 자가용을 구입하고 취득·등록세를 면제받았다. 그 뒤 6개월이 지나 회사 사정으로 ㅂ씨는 잠시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ㅂ씨는 기숙사로 주소를 옮겼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사는 집만 달라졌을 뿐 자가용으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은 모두 ㅂ씨가 담당하였다. 10층에 사는 언니가 더 자주 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어느날 180만원의 취득·등록세 추징 결정이 날아왔다. 게다가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산세까지 내라는 것이다. 기숙사 생활도 잠시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다시 ㅂ씨가 모실 요량이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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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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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방세특례제한법은 장애인과 주소가 같은 가족이 공동명의로 혜택을 받아 차량을 취득하고 나서 1년 이내에 팔거나 장애인과 세대 분리를 하면 기존에 받았던 감면 혜택을 취소하고 추징을 한다. 다만 결혼, 이민, 면허 취소 등과 같이 부득이한 사유인 것을 증명하면 추징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세대 분리’라는 것이 주민등록을 옮기기만 하면 실제로 장애인 부양을 계속하더라도 실질에 상관없이 100% 추징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같이 살면서 돌보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ㅂ씨는 억울하다. ㅂ씨의 경우 어머니와 분리된 것일까? 어머니를 주로 모시는 것은 여전히 ㅂ씨이고, 무엇보다 ㅂ씨는 취득세 탈세 의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주민등록에 쓰인 문자를 기준으로 한 형식적인 세법 해석. 무한한 시간 속에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로 만난 우리들. 세금 해석에서 너무 냉혹한 것은 아닌지. 다 밥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은가.
조수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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