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7 20:27
수정 : 2017.07.18 14:26
동네변호사가 간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인상한 시급 7530원으로 지난 15일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이제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법정 기준 근로시간으로 정해놓고 있다. 법정 기준 근로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시급 1만원 기준으로 최소한 월급 209만원을 보장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지급 능력이 안 되는 사업장들이 너무 많다는 게 주된 근거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쪽 위원으로 참여했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위원들은 편의점과 주유소, 슈퍼마켓, 피시방, 음식점, 이·미용업, 경비직, 택시 등의 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주장해왔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들의 논리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단순히 임금만 올리는 문제가 아닌, 노동시간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직원 2명을 고용해 작은 제조업을 하는 친구가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최저임금 1만원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열악한 업계 사정상 209만원의 월급을 주는 건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직원들에겐 세전 월 150만원을 주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기는 최저임금법 위반 범죄자가 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대비하면 좋겠느냐는 물음도 이어졌다.
나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더 올려줄 수 없다면 근로시간을 줄여라.”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영세사업주를 배려해 4인 이하 사업장에는 많은 특혜를 주고 있다. 해고 제한도 없고, 근로시간 제한도 없다.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할증임금 50% 적용도 하지 않는다. 다만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지급 규정이 적용될 뿐이다.
최저시급 1만원 기준으로 1일 6시간, 1주 30시간 정도 일을 하면 월급이 156만원 수준이 된다. 나는 친구에게 “월급을 6만원 인상하고 근무시간을 30시간으로 단축하라”고 했다. “6만원도 못 올릴 형편이면 1일 5시간30분으로 노동시간을 정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산수’를 알려줬다.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나 역시 작년부터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과 상의해 업무 시스템을 바꿔 1주 3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줄어든 노동시간에 맞춰 업무 방식을 바꿨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부에선 종일 가게나 영업장을 지켜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다. 인식의 전환은 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편의점(슈퍼마켓), 주유소, 피시방, 음식점(술집) 등은 대표적으로 24시간 영업하는 업종이다. 그리고 대부분 4인 이하 사업장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이 업계에선 거의 ‘최고임금’이고, 그 이하를 지급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24시간을 영업하는 업종과 업소가 많은 거로 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4시간 영업은 노동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업주들은 노동자를 고용한 뒤 밤에 자겠지만, 여유가 없는 사업주는 할증임금 50%를 아끼기 위해 자신이 야간 노동을 할 것이다. 알바생 한 명 쓰지 않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낮에는 부인이, 밤에는 남편이 24시간 맞교대하는 편의점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내가 본 그런 편의점 중 한 곳은 2년 만에 남편이 병들어 문을 닫았다. 야간 노동으로 인해 죽거나 병든 노동자들을 숱하게 본 나로서는 24시간 영업은 그 자체로 강력하게 규제되어야 할 비인간적인 노동일 뿐이다.
그러니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최저시급 1만원에 법정 노동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어려우면 노동시간을 줄이면 된다. 그래도 24시간 영업을 해야 한다면 나머지 시간에 사용자가 직접 일하면 된다. 그도 어려우면 폐업을 하고 최저시급 1만원을 받는 노동자로 생활하는 게 낫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비혼 단신 노동자들의 2015년 생계비는 167만원이다. 이를 최저시급으로 환산하면 8000원이다. 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2017년 1인가구의 이론적 표준생계비는 민주노총 추산 250만원, 한국노총 추산 220만원이다. 최저시급 1만원은 결코 많은 게 아니다.
박훈 변호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