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8 20:21
수정 : 2017.09.18 20:52
동네변호사가 간다
개인회생과 파산 사건을 맡다 보면 숱한 사연들을 보게 된다. 내가 있는 창원 지역은 조선업종의 불경기를 그대로 실감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떠나고, 그들은 어렵사리 유지해온 가정경제를 위해 오늘도 어떤 대부업체의 문을 초조하게 두드린다. 그러나 다시 비슷한 임금 수준으로 빠르게 재취업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빚은 돌려막기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결국 고리대금업자의 배만 불리게 된다.
이 나라는 고리대금업자의 나라다. 이자제한법이 부활해 최고 이자율을 25%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27.9%에 이른다. 반면 예금 이자율은 1.5~3%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제2금융권 이하의 대부업체를 이용하거나, 카드론을 3개 이상 쓰거나, 현금서비스를 잇달아 쓰는 사람의 신용등급을 대폭 낮추고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다음달이면 어떻게든 돈이 생기겠지’, ‘다음달에는 누구한테 돈을 빌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예상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다시 고리대금업체나 사채업체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빚을 내는 이들이 빚을 떼먹을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을 갚는다. ‘빚을 갚으려’ 강도·살인을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빚을 장기간 갚지 못한 사람들은 음지로 숨어들어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 지긋지긋한 채권 추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있어 채권추심업자의 방문, 문자, 전화 등이 제한되지만,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채권추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기본급 자체가 없다. 받은 돈의 일정 비율을 자신들의 성과급으로 받아가기 때문에 미수 채권을 3% 수준에서 사들여 그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내면 그들의 돈잔치가 시작된다. 그들은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것에도 소송을 내고, 소송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점을 악용해 공시송달로 시효를 연장해 악착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돈을 받아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벌벌 떨면서 자기와 상관이 없는 아빠, 엄마, 형, 동생의 빚도 갚아야 하는 줄로 잘못 알고 갚거나 심지어 빚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더는 빚을 낼 수가 없어 고리대금업체나 사채업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는 과감하게 개인회생과 파산을 신청할 것을 권한다. 빚 돌려막기는 고리 이자에 치여 인생 자체를 망가뜨릴 뿐이다. 개인회생은 수입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 3년, 최장 5년 동안 원금을 갚아가는 방식으로, 수입에서 일정한 생계비(1인가구 99만원, 2인가구 167만원, 3인가구 218만원, 4인가구 268만원)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을 상환하면 된다. 원금을 다 갚지 않아도 일정 기간만 상환을 하면 되기 때문에 수입이 적고 빚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파산은 소득과 재산이 없어 도저히 빚을 갚는 게 불가능할 경우에 신청하면 법원이 개인의 실제 상황을 검증해 빚 전체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파산선고 뒤 재판에서 면책선고를 받으면 파산으로 인한 모든 불이익에서 벗어나 경제적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수입이 적거나 파산요건도 되지 않는다면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조정을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개인회생과 파산은 법의 테두리에서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개인에게 오점으로 남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개인회생과 파산을 허용한 것은 자본주의를 더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인회생과 면책 이후 다시 신용을 쌓으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지금 내 책상 위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서른두 살 노동자의 진술서가 있다. “저는 지금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연체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죽을힘을 다해 연체 없이 잘 갚겠습니다. 좋은 판결 부탁드립니다. 정말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가슴이 아프다.
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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