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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9 17:20 수정 : 2016.07.12 15:16

포데모스의 공약들 중 대부분은 이미 한국의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들이다. 스페인이든 한국이든 진보정치의 시대적 과제는 ‘보편 복지’이고 ‘경제 민주화’다. 다만 스페인에서는 이 과제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중심 세력이 우리보다 먼저 성장했을 뿐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며칠 전 유럽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투표가 있었다. 26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이었다. 당초에는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가 연합좌파(공산당 등이 결성한 정당연합)와 함께 만든 선거연합 ‘우니도스 포데모스’(‘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뜻)가 좌파 제1당으로 부상하리라 예상됐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기성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사회주의노동자당(PSOE, 22.7%)에 밀려 3위가 됐다(21.1%). 지난해 12월 총선과 엇비슷한 결과다.

비록 포데모스가 제2당으로 부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창당한 지 고작 2년차인 세력이 20%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포데모스가 어떤 대안을 제시하기에 이렇게 바람이 그칠 줄 모르는 것인가? 이번 총선에서 우니도스 포데모스가 발표한 ‘50대 공약’에 정치 개혁부터 동물권 보장에 이르는 이들의 대안이 잘 정리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50대 공약 중 첫 항이 에너지 전환 계획이라는 사실이다. 기후 변화에 맞서 2050년까지 완전히 탈탄소화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 계획과 재생가능에너지 확충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2024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시급한 과제로는 고용 안정을 위한 노동법 개정이 있다. 이를 위해 산업별 단체협상의 지위와 효력을 강화하며 노동조합 파업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또한 1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한다.

50대 공약에는 재정 위기를 빌미로 한 긴축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포데모스의 지론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오히려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데모스는 특히 보장소득 프로그램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한다. 가계 소득이 법률로 정한 기준에 미달하면 이를 보완할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공약에 따르면,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는 1인 가구의 기준 소득을 월 600유로(약 78만원)로 잡겠다고 한다. 포데모스는 창당 과정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당론으로 채택할지 토론한 바 있다. 보장소득제도는 현실에 맞춰 이 방안을 변형한 정책으로 보인다.

복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50대 공약은 산업 정책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예산을 국가 주도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다고 하며, 재계와 노동계가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설립해서 전략 부문을 선정, 지원하겠다고 밝힌다. 중소기업과 사회적 경제 역시 집중 지원 대상이다.

이런 정책들을 실시하자면, 당연히 재정이 필요하다. 포데모스는 탈세 방지와 증세로 이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 세금 감면을 폐지하고 금융 거래에 과세하며 부유층 자산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50대 공약 중에는 스페인의 독특한 사정과 관련된 내용도 많다. 분리 독립 여론이 강한 카탈루냐 주민들에게 자결권을 보장한다든가 유럽연합의 민주적 개혁과 관련한 공약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내용 역시 많다. 위에 소개한 공약들 중 대부분이 이미 한국의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들이다. 스페인이든 한국이든 진보정치의 시대적 과제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제란 결국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출발점으로서 사회국가(복지국가)를 재건 혹은 새로 건설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기존 경제 구조를 뜯어고치고 이 과정에서 거대 자본 권력과 대결하길 마다지 않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보편 복지’이고 ‘경제 민주화’다. 한국에서도 한때(2012년 대선) 쟁점이 되었던 이야기들이다. 다만 스페인에서는 이 과제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중심 세력이 우리보다 먼저 성장한 데 반해 우리는 아직 그렇지 못할 뿐이다.

한국 진보세력이 포데모스에서 진정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들의 성공에서 전에 없던 기적의 요소를 찾으려고 할 게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수정치의 부침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하게 진보정치의 오랜 주장(노동권, 보편 복지, 경제 민주화 등)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정신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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