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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5 18:09 수정 : 2017.03.15 20:58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지난 토요일, 시민들은 다섯 달을 끌어온 촛불 혁명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관심이 조기 대선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새누리당이 붕괴한 뒤에 부동의 1위를 달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관심이 집중된다.

물론 시민혁명의 과제들을 이어받을 정권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이미 두 차례나 시민혁명의 승리가 새 정부의 수립이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험을 했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개혁을 미적대며 내분만 일삼다 군부 쿠데타의 길을 열어주었다. 1987년에는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대선에서 군부 독재 잔당이 끝내 재집권했다.

이런 쓰라린 경험 때문에도 더욱 대선 승리에 모든 관심과 열정이 쏠릴 수밖에 없다. 또한 1960년의 민주당 신-구파 분열과 1987년의 김영삼-김대중 분열을 되새기며 비새누리당 정당들의 대동단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니, 요즘은 ‘대동단결’ 같은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협치’나 ‘공동집권’, ‘연립정부’라 한다. 시민혁명 편에 섰던 정당들이 다 함께 촛불 여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더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단지 촛불 여당만인가 하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정당 체제 이야기다. 오랫동안 승자독식 정치 제도에 익숙해 있다 보니 한국 정치에서는 늘 누가 정권을 차지하느냐가 첫 번째 관심사다. 그러나 정치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집권당인지만은 아니다. 어떤 야당이 집권당과 어떤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는지도 중요한 결정 요소다. 집권당의 성격이 불변일지라도 주요 야당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에 따라 정치의 주된 쟁점과 관심은 크게 바뀐다.

2000년대 초, 중반에 이를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당시 ‘야당’이라고 하면 곧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뜻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 더 보수적인 야당이 집권당에 맞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대립선이 항상 집권당 정책 기조보다 더 오른쪽에 자리했다. 남북 화해 정책에 흠집을 내거나 사립학교 재단 비리 척결 같은 너무도 당연한 정책들에 딴죽 거는 게 당시 국회의 일상이었다.

만약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가장 주목받는 야당이었다면 어땠을까? 정치 쟁점과 관심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정치적 대립선이 집권당 정책 기조보다 더 왼쪽에 그어졌을 것이다. 재벌 문제, 노동권과 복지 확대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주요 쟁점이 됐을 것이다. 우리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이전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며 아프게 되새겨야 할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한계만이 아니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정당 체제 전반의 한계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선 이후의 정치 지형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광장에 함께했던 정당들이 모두 공동 집권하는 게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촛불 여당과 함께 촛불 야당도 있어야 한다.

촛불 여당과 촛불 야당 사이의 경쟁과 대립이 정치판을 주도해야 한다. 새 정부가 시민혁명을 완수할 청사진을 제시하면 야당이 그 폭을 넓히고 속도를 높이라고 채근하는 구도여야 한다. 야당이 시민혁명 다음 단계로 사회경제 구조 개혁을 요구하면 이게 정부와 야당의 주된 논쟁거리가 되는 지형이어야 한다. 이것이 시민혁명 이후의 대의정치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새누리당 잔존 세력이 국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다. 비록 조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범새누리당 세력이 제1야당의 탈을 쓰고 부활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기반이다.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직접적인 성과는 새누리당을 극적으로 붕괴시킨 것이지만, 새누리당 잔존 세력의 회생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이는 일시적 성과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대선의 관심사는 ‘정권’ 교체만이어선 안 된다. 또 다른 중대한 과제는 ‘야당’ 교체다. 마침 탄핵 직후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이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을 누르고 3위 정당으로 부상한 것은 좋은 신호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민주당 왼쪽의 진보정치세력들에게 대선과 그 이후 정국은 절체절명의 기회이면서 동시에 단순한 더하기, 빼기 셈법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시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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