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대선 정국이다. 촛불혁명으로 열린 조기 대선이라 그런지 후보들이 꺼낸 구호는 단호하다. 유력 주자 중 한 명은 ‘적폐’를 청산하자 하고, 다른 한 명은 ‘무능한 상속자들의 나라’를 끝내자고 한다.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도 먼저 바꿔야 할 게 있다. 바로 ‘51 대 49’의 정치다. 51과 49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1, 2위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이다. 정확하게는 51.55% 대 48.02%였다. 부연 설명 따위 필요 없이 양대 정당의 정치 독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치다.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결합된 정치제도가 양당 구도를 강요한다지만, 1987년 이후 대선에서 이 정도로 양당 구도가 첨예하게 나타나기는 처음이었다. 촛불혁명의 출발은 다름 아니라 이 숫자, ‘51 대 49’였다. 51%의 지지로 등장한 정부 아래서 49%는 오직 ‘좌절’만을 맛봐야 했다. 그 전 대선에서도 항상 절반 넘는 유권자들은 패배감을 느꼈다. 그러나 50%에 육박하는 지지층을 규합하고서도 패한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자기가 공약한 ‘복지’, ‘경제 민주화’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남북관계도 파국으로 내몰며 49%의 바람을 철저히 짓밟았다. 지난 4년간 이 나라에서는 절반의 국민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신세였다. 그럼 51%는 승자였던가? 현대 사회에서 인구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한 집단으로 결집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사람들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51%가 모였다면,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극히 적고 거리는 아주 멀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무능과 부패를 드러내서 51%가 와해될수록 이 사실이 아프게 드러났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최순실이 대통령 노릇 하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박사모 집회에서 성조기 들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생각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51%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했다. 51% 중 박사모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 지난 4년은 ‘실망’의 세월이었다. 한쪽에서는 좌절의 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망의 강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로 만났으니 그게 촛불 광장이었다. ‘51 대 49’의 정치에서 어느 한쪽도 나라의 주인임을 느끼지 못하고 패배감에 짓눌리다 떨쳐 일어난 게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박근혜뿐만 아니라 이런 거품 괴물을 낳은 양당 독점 정치 또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조기 대선 양상은 정확히 그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 진영은 2012년 대선의 아찔한 비율이 재연되길 바라는 것 같다. 자신이 ‘51%’의 주인공이 되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원내정당 후보들만으로도 5명이 되는 경쟁 구도를 어떻게든 양강 구도로 정리하려 한다. 끊임없이 ‘단일화’ 논의를 띄우고 유권자들에게는 ‘전략’ 투표를 다그친다. 언론 논조도 다르지 않다. 다시 ‘51 대 49’의 정치로 몰아가려는 강한 힘이 사방에서 작동한다. 어처구니없는 퇴보다. 답답한 역사의 맴돌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 시민, 유권자들에게 호소한다. 제발 ‘전략’ 투표의 기억과 관성은 잊자.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는 언론과 인터넷의 목소리들에 신경 쓰지 말자. 오직 지난 수개월 동안 광장에서 생각하고 느낀 바에 따라 나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그/그녀를 선택하자. 어쩌면 이런 선택이야말로 이번에는 가장 ‘전략’적일 수 있다. 누가 당선되든 당선자는 다섯 정당 후보들이 모은 표의 분포를 고려해 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의석이 119석인 정당 후보가 당선되든 40석인 정당 후보가 당선되든 마찬가지다. 어차피 의석이 과반수에 한참 못 미치기에 협상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촛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소신’ 표의 분포다. 차이가 극히 미미해진 1, 2위 후보 중 하나에게 던진 ‘전략’ 표가 아니라 말이다. 이제는 소신 투표가 전략 투표다. 따지고 보면 촛불혁명도 기성 정당과 정치 전문가들의 훈수에 아랑곳없이 소신 하나로 광장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친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대선에서도 그 결기가 필요하다.
칼럼 |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51 대 49’ 정치를 끝내자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대선 정국이다. 촛불혁명으로 열린 조기 대선이라 그런지 후보들이 꺼낸 구호는 단호하다. 유력 주자 중 한 명은 ‘적폐’를 청산하자 하고, 다른 한 명은 ‘무능한 상속자들의 나라’를 끝내자고 한다.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도 먼저 바꿔야 할 게 있다. 바로 ‘51 대 49’의 정치다. 51과 49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1, 2위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이다. 정확하게는 51.55% 대 48.02%였다. 부연 설명 따위 필요 없이 양대 정당의 정치 독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치다.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결합된 정치제도가 양당 구도를 강요한다지만, 1987년 이후 대선에서 이 정도로 양당 구도가 첨예하게 나타나기는 처음이었다. 촛불혁명의 출발은 다름 아니라 이 숫자, ‘51 대 49’였다. 51%의 지지로 등장한 정부 아래서 49%는 오직 ‘좌절’만을 맛봐야 했다. 그 전 대선에서도 항상 절반 넘는 유권자들은 패배감을 느꼈다. 그러나 50%에 육박하는 지지층을 규합하고서도 패한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자기가 공약한 ‘복지’, ‘경제 민주화’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남북관계도 파국으로 내몰며 49%의 바람을 철저히 짓밟았다. 지난 4년간 이 나라에서는 절반의 국민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신세였다. 그럼 51%는 승자였던가? 현대 사회에서 인구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한 집단으로 결집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사람들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51%가 모였다면,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극히 적고 거리는 아주 멀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무능과 부패를 드러내서 51%가 와해될수록 이 사실이 아프게 드러났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최순실이 대통령 노릇 하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박사모 집회에서 성조기 들고 울부짖는 사람들은 생각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51%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했다. 51% 중 박사모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 지난 4년은 ‘실망’의 세월이었다. 한쪽에서는 좌절의 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망의 강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로 만났으니 그게 촛불 광장이었다. ‘51 대 49’의 정치에서 어느 한쪽도 나라의 주인임을 느끼지 못하고 패배감에 짓눌리다 떨쳐 일어난 게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박근혜뿐만 아니라 이런 거품 괴물을 낳은 양당 독점 정치 또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조기 대선 양상은 정확히 그 반대로 흐르고 있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 진영은 2012년 대선의 아찔한 비율이 재연되길 바라는 것 같다. 자신이 ‘51%’의 주인공이 되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원내정당 후보들만으로도 5명이 되는 경쟁 구도를 어떻게든 양강 구도로 정리하려 한다. 끊임없이 ‘단일화’ 논의를 띄우고 유권자들에게는 ‘전략’ 투표를 다그친다. 언론 논조도 다르지 않다. 다시 ‘51 대 49’의 정치로 몰아가려는 강한 힘이 사방에서 작동한다. 어처구니없는 퇴보다. 답답한 역사의 맴돌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 시민, 유권자들에게 호소한다. 제발 ‘전략’ 투표의 기억과 관성은 잊자.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는 언론과 인터넷의 목소리들에 신경 쓰지 말자. 오직 지난 수개월 동안 광장에서 생각하고 느낀 바에 따라 나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그/그녀를 선택하자. 어쩌면 이런 선택이야말로 이번에는 가장 ‘전략’적일 수 있다. 누가 당선되든 당선자는 다섯 정당 후보들이 모은 표의 분포를 고려해 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의석이 119석인 정당 후보가 당선되든 40석인 정당 후보가 당선되든 마찬가지다. 어차피 의석이 과반수에 한참 못 미치기에 협상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촛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소신’ 표의 분포다. 차이가 극히 미미해진 1, 2위 후보 중 하나에게 던진 ‘전략’ 표가 아니라 말이다. 이제는 소신 투표가 전략 투표다. 따지고 보면 촛불혁명도 기성 정당과 정치 전문가들의 훈수에 아랑곳없이 소신 하나로 광장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친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대선에서도 그 결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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