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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0 18:18 수정 : 2017.05.10 21:20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9일 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지지자들은 대개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여론조사 상승세를 믿고 다들 두 자릿수를 기대했기에 출구조사 예상인 5.9%가 성에 차지 않은 것이다.

개표해보니 실제 득표율은 6.2%였다. 이 숫자를 마주하고 나는 문득 책 제목 하나를 떠올렸다. <출발 3%>. 2006년 지방선거의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김종철이 낸 책 제목이다. 이 선거에서 김종철 후보는 2.9%를 얻었다. 원내 제3당이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종철 후보는 여기에 ‘출발’이라는 두 글자를 덧붙여 전혀 다른 방향의 메시지를 읽으려 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의 초라함이 아니라 앞으로 가야 할 길의 광대함 말이다.

실은 그 무렵 진보정당이 승자독식 선거에서 거둔 성적이 다 그러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를 얻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받은 지지도 3.3%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워낙 진보정당이 암흑기여서 2000년대가 황금기처럼 보이지만, 이 시기는 진보정당에는 ‘출발 3%’ 시대였다. 이런 과거를 돌이켜보면, 심상정 후보의 성적이 달리 보인다. ‘출발 3%’를 뒤로하고 이제 ‘출발 6%’ 시대가 열렸다.

‘출발 6%’의 의미는 단지 5% 선을 돌파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심상정 후보에게 쏟아진 첫 질문은 “정말 완주할 생각입니까”였다. 완주하더라도 3%를 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티브이 토론회를 거듭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물론 진보정당의 훌륭한 정책과 후보의 뛰어난 자질이 한몫했지만, 더 크게는 촛불 이후 새로운 대안에 기꺼이 귀를 열 준비가 된 유권자들 덕분이었다. 양당 정치의 압박이 느슨해진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정치적 선택을 저울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것은 20대와 여성이었다.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핵심 집단이 바로 이들이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확인됐고, 유세 현장에서도 목격됐다. 정의당 유세 차량을 반가이 맞이한 이들은 대개 청년, 여성, 성소수자들이었다.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으로 가장 고통받는 그 사람들이었다. 이전에는 정치 기피층에 가까웠을 이들이고, 촛불을 계기로 정치에 초대된 사람들, 아니 자기 것이어야 할 정치를 이제야 찾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정당, 그것도 진보정당의 열혈 지지자로 나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새 시대의 징표이고,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거둔 최대 성과다. 진보정당은 항상 ‘청년과 여성, 성소수자의 정당’을 표방했지만, 그 실현은 미래의 숙제로 미뤄두곤 했다. 그런데 촛불혁명의 여파는 진보정당에 느닷없는 축복을 선사했다. 이제 ‘청년과 여성, 성소수자의 정당’은 정의당에는 미래 과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갖춰야 할 모습이 됐다.

이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시험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지층은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인 조직 노동이나 30대 남성 화이트칼라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적 지지층에게 ‘촛불’은 ‘민주대연합’의 연장이다. 그래서 새 정부와 정의당의 협치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 연립정부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200만이 넘는 유권자들이 심상정 후보를 택한 것은 ‘촛불’ 내부의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 다른 목소리들을 계속 대변하는 것과 민주대연합의 관성 사이에는 분명 간극과 긴장이 있다. 이 속에서 정의당이 찾아내야 할 출구는 무엇인가?

협치의 반대편에는 선명 야당의 길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새 지지층을 만족시키는 데는 부족하다. 청년, 여성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먼 훗날의 승리를 기약하며 현실을 인내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나 슈퍼우먼방지법은 당장 실현되어야만 할 긴급 처방이다. 정의당이 청년, 여성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려면, 이런 사안들에서 뚜렷한 단기적 성과를 내야만 한다. 과연 어떻게?

풀기 쉽지 않은 물음들이고, 처음 겪는 고민들이다. 그러니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지 못한 실망은 하룻밤으로 족하다. 다른 야당들이 대선 후유증에 휩싸일 바로 이때에 정의당은 ‘촛불’의 대중정치에 다시 나서는 모습을 통해 ‘출발 6%’ 시대가 던지는 물음들의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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