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미래는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와 대구교육감 선거를 바탕으로 점쳐볼 수 있다. 하나는 민주당 오른쪽이 더욱 축소되면서 진보정당들이 성장해 유럽식 정당 구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누리당 계승 세력들이 반격에 성공해 전통적인 양당 구도가 지속되는 것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지방선거 끝나고 벌써 열흘 가까이 흘렀다. 하지만 선거 결과의 충격은 아직 가실 줄 모른다. 그만큼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압도적이었고 자유한국당 심판은 준엄했다. 이 결과가 말해주는 우리의 ‘현재’는 명확하다. 그것은 “촛불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선거 결과를 더 들여다보면,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도 눈에 띈다.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가 한 사례다. 민주당이 50% 넘게 득표한 점은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다. 한데 자유한국당 득표율이 채 20%를 넘지 못했다(18.07%). 반면 정의당이 11.87%, 녹색당이 4.87%를 얻었다. 민주당 왼쪽 정당들의 득표를 다 합치면, 20%가 넘는다. 자유한국당이 위축된 대신 진보정당들의 공간이 넓어졌다. 또 다른 사례는 대구교육감 선거다. 세 후보가 경쟁한 가운데 강은희 후보가 40% 좀 넘는 득표로 당선됐다. 강은희 당선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 국정 교과서, 위안부 합의 등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후보가 미래 세대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뽑혔다. 이는 자유한국당이 혹독한 심판을 받긴 했으되 부활의 싹까지 뽑히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서로 정반대 방향이지만, 두 사례 모두 한국 정치의 ‘미래’를 예시한다. 물론 ‘현재’의 대세는 민주당의 파란색 물결이다. 그리고 이 ‘현재’는 2020년 총선까지는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촛불 시민들의 자유한국당 심판은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총선까지 거치지 않고는 수그러들지 않을 모양새니까 말이다. 그러나 길게 잡아도 여기까지다. 여당이 스스로도 “두렵다” 할 정도로 승리를 거둔 것은 순전히 자유한국당을 심판할 수단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의 대상이나 강도가 지금 같지 않게 되면, 한 정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형국도 더는 지속될 수 없다. 혹자는 일본식 1.5당 체제(자민당 독주 체제)가 등장할 수 있다고 넘겨짚지만, 일본 사례는 어디까지나 20세기 중반 냉전시대에 정착된 것이다. 격변이 거듭될 21세기 대전환기에 이런 체제가 반복되기는 쉽지 않다. 그럼 파란 물결이 조금씩 걷혀가면서 드러날 한국 정치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와 대구교육감 선거를 바탕으로 두가지 시나리오를 점쳐볼 수 있다. 하나는 민주당 오른쪽이 더욱 축소되면서 진보정당들이 성장해 유럽식 정당 구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누리당 계승 세력들이 반격에 성공해 민주당과 이들 사이의 전통적인 양당 구도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 중 어느 쪽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둘 다 지금은 아득해 보이기만 하는 장애물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후속 세력들은 과거와 달리 반격에 나서기 쉽지 않다. 지금이 촛불 ‘이후’일 뿐만 아니라 남·북·미 협상 ‘이후’이기 때문이다. 냉전·친재벌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훈수가 많지만, 그리되면 굳이 민주당과 따로 존재하며 경쟁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직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기억과 전혀 상관없는 강력한 대선 주자가 등장해야만 부활할 수 있을 텐데, 아무리 봐도 그런 인물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진보정당들이 마주한 장애물은 승자독식 선거제도다. 현재보다 비례성이 훨씬 강화된 선거제도여야만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 같은 결과가 다른 모든 선거에서 반복될 수 있다. 촛불 ‘이후’의 유권자들은 게임의 룰만 바뀐다면 과감히 새로운 정당 체계를 만들어낼 태세임이 감지됐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룰의 도입을 막으려는 기성의 힘이 막강하다. 어느 쪽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앞으로 몇년간 미결정의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향후 몇년간이 한국 정치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 시간을 거치며 한국 정치가 ‘과거’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전에 없던 ‘미래’가 열릴지 판가름날 것이다. 전자를 좇는 이들이 기댈 것은 정치의 관성이다. 그러나 후자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믿을 구석은 있다. 그것은 사회의 변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진보 세력은 이 변화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 스스로 먼저 변화함으로써 이 변화에 올라타야 한다. 선거제도를 변화시킬 힘도 어쩌면 의사당 안의 지루한 협상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내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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