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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6 17:55 수정 : 2018.08.17 12:09

시장과 국가 모두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적절히 배합돼야 할 제도들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오류는 그중 시장만 떼어내 다른 모든 제도 위에 세운 데 있다. 김병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론은 이 철 지난 오류를 애써 뒤늦게 반복하려는 기이한 몸부림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혁신의 방향으로 ‘탈국가주의’를 내걸었다.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내놓은 일성이 “새로운 시대, 탈국가주의 시대를 열 때”라는 것이었고, 현 정부를 비판할 때마다 “국가주의”라는 혐의를 들이댄다. 그러면서 “자율, 시장, 분권”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이 소식을 처음 듣고 떠오른 생각은 시대정신을 거슬러도 참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것이었다. 단지 국가와 시장 중에 시장의 손을 들어줘서가 아니다. 국가와 시장을 대립시키고 한쪽을 명분으로 다른 한쪽을 때리는 방식 자체가 너무도 구태의연해서다.

2008년 이전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세계 표준인 듯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고통 속에 세상은 이 미몽에서 깨어났다. 이때 금융시장이 벼랑 끝으로 내몬 세상을 그나마 파멸에서 구한 것은 바로 김병준 위원장이 ‘국가주의’라 칭할 만한 해법들이었다. 정부의 전면 개입, 사실상의 은행 국유화, 파격적 재정-통화 정책, 이런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시장 대신 국가를 중심에 놓으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장과 국가를 양자택일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국가 없이 존립할 수 없고, 국가 역시 시장과 함께해야만 작동할 수 있다. 시장과 국가 모두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적절히 배합돼야 할 제도들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오류는 그중 시장만 떼어내 다른 모든 제도 위에 세운 데 있다. 김병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론은 이 철 지난 오류를 애써 뒤늦게 반복하려는 기이한 몸부림이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일각의 탈국가주의론을 사멸하는 정치 세력의 무리수로만 볼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국가’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부터 날 이유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연상되는 것들은 친위 쿠데타 계획을 몰래 작성하는 군 내 정보기관이거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안 좋다면서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고위 경제 관료, 청와대 권력에는 알아서 굽실대면서도 도도한 시대 변화에는 구차한 논리로 맞서는 사법부다. 자유한국당의 탈국가주의론은 한국 국가기구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를 환기하며 지지를 구한다. 이 모든 현실의 최대 기여자가 그들 자유한국당임에도 말이다.

어찌 보면 영리한 접근법이라 하겠다.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결과임은 외면하면서 이를 빌미 삼아 정치생명을 새롭게 연장하려는 현란한 곡예니까 말이다. 또한 그런 만큼 한국 사회의 미래에는 참으로 위험한 시도이기도 하다. 국가의 추악한 얼굴을 활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하면서도 막상 그 얼굴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 국가기구의 문제들에는 탈국가주의 말고 다른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그것은 국가기구의 민주화다. 국가가 혐오스럽다고 시장에서, 혹은 시민사회에서 유토피아를 찾을 수는 없다. 이런 해법은 언제나 우리가 진짜 해야 할 과제를 회피하게 만드는 구실만 한다. 진짜 해야 할 일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 이 모든 제도의 부단하고 철저한 민주화다.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개혁 중인 제도들을 21세기 한국의 조건에 맞게 배합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탈국가주의’만큼이나 반대편의 ‘적폐 청산’ 구호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적폐 청산’은 국가기구 민주화와 엇비슷하면서도 엇갈리는 말이다. ‘적폐 청산’도 국가기구 내부의 심각한 문제들을 가리키기는 한다. 하지만 ‘적폐’는 국가기구 안의 비민주적인 관행이나 제도보다는 이를 활용해 전 정권과 유착한 세력들만을 뜻하기 쉽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은 근본적 제도 개혁에 한참 못 미치는 인사 조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이런 막연한 동맹에 만족할 수 없다. 무엇보다 현실이 우리의 각성과 방향 전환을 재촉한다. 최저임금제 개선 정도의 사회 개혁도, 미투운동의 전진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온갖 황당한 권력 놀음의 재발 방지도 지금 모두 한가지 과제 앞에서 만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사회 모든 개혁의 필수조건인 개혁이 무엇인지 더없이 분명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국가기구에 뿌리내린 엘리트 권력을 해체하고 국가기구를 시민의 통제 아래 두는 일이다. 바로 국가기구의 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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