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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3 17:56 수정 : 2018.09.14 09:54

집값 폭등에는 금융 불안정, 수도권 초집중화 말고도 또 다른 커다란 역사의 흐름이 얽혀 있다. 민주화 이후 복지국가 전환의 끊임없는 지체다. 그렇기에 부동산 대책 역시 부동산 분야만의 해법에 머물 수 없다. 이제 복지국가로 전환한다는 단호한 신호를 쏘아 올려야 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최근 부동산 광풍이 불자 언론 지면에도 깊이 있는 진단과 대안이 발 빠르게 쏟아졌다. 그런데 이들이 예외 없이 지적하는 게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부동산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눈을 금융으로 돌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유령처럼 떠도는 수백조원의 유동자금이 미국 금리 인상 전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투전판을 벌인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주택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니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또 어떤 이는 모든 게 서울에 쏠려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는다. 수도권이라는 초거대 도시에 나머지 지역들이 딸려 있는 형국이라 수도권 집값이 끝없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들에 한 가지 주장을 더 덧붙이고 싶다. 최근 집값 폭등에는 금융 불안정, 수도권 초집중화 말고도 또 다른 커다란 역사의 흐름이 얽혀 있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복지국가 전환의 끊임없는 지체다.

개발 독재기에 가계는 실업이나 질병, 노후를 스스로 다 책임져야 했다. 국가복지제도로는 의료보험 정도가 막 도입된 형편이었고, 기업복지 혜택 대상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따라서 가계는 미래에 생길지 모르거나 반드시 닥칠 문제들에 오로지 저축으로 대응해야 했다. 국가는 손쉬운 자본 동원을 위해 이런 자구책을 적극 장려했다. 사회학자 김도균의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서울대 출판문화원, 2018)가 이를 잘 정리하고 있다.

가계 저축의 상당 부분은 대개 내 집 마련에 쓰였다. 그런데 서울 강남 중산층은 자가 소유가 단지 주거 안정만이 아니라 노후 대비, 더 나아가 불로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다른 지역 중산층도 이 경험을 학습해 이를 반복했다. 이것이 대체로 민주화 과정이 열리고 ‘민주’정권이 잇달아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진 일이다.

실은 바로 이때에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가 복지국가로 전환하기 시작했어야 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 체제라는 점에서는 복지국가로 나아갈 필연적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민주주의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에서는 복지국가라는 중간 기착지를 반드시 경과해야만 했다. 실업이나 노후 같은 문제를 사회가 집단적으로 해결하고 그 구체적 해법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참여하는 정치를 통해 결정하는 단계로 접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전환은 제대로 시작되지 못했다. 끊임없이 지연되기만 했다. 그동안에 중산층은 과거에 앞선 이들이 성공을 거두었던 생존 방식에서 계속 출구를 찾았다. 저축해서 주택을 사고, 주택 소유자가 되고 나면 부동산 시장 투자자로 뛰어들었다. 이를 통해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고 노후 소득까지 보장받으려 했다. 복지국가 전환이 늦춰질수록 이 생존법은 본능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반대편에는 이에 동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붉은 깃발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사회경제적 문제로까지 민주화를 밀어붙였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지난 몇십년은 인류 역사상 이런 집단행동이 성공하기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게 출산 파업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난제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런 선택들이 응어리져 지금 우리 앞에 대혼돈으로 폭발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동산 대책 역시 단순히 부동산 분야만의 해법에 머물 수 없다. 조세, 복지, 금융 등등의 정책을 총동원해 이제 복지국가로 전환한다는 단호한 신호를 쏘아 올려야 한다. 불로소득 과세를 대폭 늘리고 그만큼 복지 지출 또한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부동산 시장 참여로 노후를 해결하려는 중산층의 익숙한 생존법은 더 이상 통할 수 없으며 더 안정된 다른 출구가 열리고 있음을 실물로 보여줘야 한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어설픈 봉합이나 이해 조정이 아니다. 선명한 선택지를 제시해 모두의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더 많은 자산을 손에 쥔 자들이 늘 승자인 세상인가, 아니면 일하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세상인가?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비법에 따른다면, 결국 이런 양자택일이다. ‘땅’인가, ‘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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