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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18 17:30 수정 : 2016.09.18 19:23

이승욱
닛부타의 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많은 한국 남자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다. 자신과 엄마의 관계다. 장가를 들고 나면 이 문제는 아내라는 존재로 인해 확연히 부각된다. 사회적 지위의 높낮이, 배움의 많고 적음, 인성의 품격,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상당수 남성들이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청맹과니가 된다. ‘엄마’를 극복하지 못하고(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우리 엄마’ 품에 안겨 사는 남자들이라면 성인 여성과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성질 사나운 시어른들 비위도 맞춰가며 시가의 대소사까지 다 처리하고, 육아도 당연히 독박으로 하는데, 심지어 맞벌이까지 하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다. 몇 년에 걸쳐 박봉을 아껴 천만원을 모았다. 어찌 알고 시어머니가 숨 넘어갈 듯이 급히 (빌려) 달란다. 안 (빌려)주면 큰일 날 것 같아 그리했다. 시어머니는 한두 해가 지나도 돈 줄 생각은 없고, 어쩌다 말끝에 그 돈으로 산삼을 사서 먹었다는 얘기를 해버렸다. 돈 (빌려)줄 때 얼른 드리라고 옆에서 부채질하던 남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며느리는 차마 시어머니에게는 화를 못 내고 남편을 붙잡고 얘기했더니, ‘너는 우리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냐’며 속 좁은 여자 취급을 하더란다. 어머니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우리가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남편은 매사 이런 식이었다. 아내는 마음이 식었다.

또 다른 남성의 이야기다. 마음이 힘들 때면 엄마에게 달려가 위로를 얻는단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집이죠!” 비집고 올라오는 진심의 말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 엄마가 집이면 아내는 무엇이냐고 다시 묻자, “엄마는… 큰집이죠”. 옆에 있던 아내의 실망한 표정을 그는 차마 바로 보지 못했다.

몇 년째 실직 상태인 남편은 옆자리에서 자고, 직장 다니는 아내가 주말에 몇 시간이나 운전해서 시가까지 왔는데 아들 얼굴만 쓰다듬으며 ‘내 새끼 얼굴이 반쪽이네’ 연발하는 엄마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들, 그리고 그 모자를 바라보는 아내….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으나 육체적으로 장성한 이 남자들은 좀 세게 말해 ‘섹스 해주는 엄마’를 찾는 것 같다. 이 엄마가 심지어 돈까지 벌어오면 더 좋다. 당연히 아이도 낳아 길러주고 말이다. 명절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조상들을 위해 하루 종일 음식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아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지질한 남자들은 엄마를 찾아 ‘큰집’으로 돌아간다.

명절을 쇤 다음 달이면 이혼율이 최고 20% 가까이 급증한다. 한국 사회의 한 증상이며, 시가가 성인 남녀의 혼인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런 경우, 여성들은 자신이 혼자 육아도 하고, 돈도 벌고, 명절에 하루 종일 지짐이도 부쳐야 해서 이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장성한 한 남성의 여자, 아내로 대접받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사실 자신의 남편이 제대로 성숙한 한 남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어쨌건 상담실이 바빠지겠다. 상담사들은 사실 가정의 불행을 위해 기도한다. 더 정확히는 남성들이 계속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문전성시를 이루니 말이다. 농담이지만, 좀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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