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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1 16:27 수정 : 2017.01.01 19:07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이상 단원고 학생). 고창석, 양승진(이상 단원고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이상 일반인). 9명의 미수습자가 아직 세월호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제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오직 그 말들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같다.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말인지 시간이 갈수록 모호한 느낌이다. 새해가 밝았으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다.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3년 가까이 실종 상태이다. 가족들은 아직 기억될 주검도 보듬지 못했고, 잊힐 애도의 과정도 누리지 못했다. 호소도 묻히고, 약자 중의 소수자로, 피해자 중의 소외된 자로 유기되어 있다.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의 슬픔은 관심의 실종일 수도 있다. 그 관심의 자리를 무참하게 빼앗아 간 ‘박근혜의 7시간’은 국민 생중계 스릴러물이 되었다.

세월호는 스릴러 드라마가 아니며, ‘박근혜의 7시간’은 미스터리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비극은 박근혜라는 어처구니없는 인물로 인해 세상에 둘도 없이 흥미진진한(?) 블록버스터 범죄수사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실종된 9명을 수습하는 문제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임성한 작가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의) 막장 엽기 현실 드라마를 시청하는 데 더 정신을 뺏긴 것 같다.

세월호 참사 후,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수습 과정을 통해 뒤늦게나마 시신을 찾은 유가족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나마 희생자 295명의 유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났다. 하지만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여전히 그곳에 팽개쳐져 있다. 실종자들의 목숨도 팽개쳐져 있다.(팽목항이라는 이름에서 나는 자꾸 ‘팽개쳐진 목숨’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약자 중에서도 소수자로, 피해자 중에서도 소외된 자로, 기억의 가장자리 너머 팽목항 미수습자 가족 숙소에 유폐되어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수습하지 못한 20명의 실종된 생명, 80년 5월 광주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수백명의 실종자들, 좀 더 멀리는 숫자도 가늠하기 어려운 보도연맹 사건과 제주 4·3의 실종자. 그 외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실종되어 있다. 우리 눈앞에서 세월호에 갇혀 실종된 이 9명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미래라는 역사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가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같은 비극을 등장인물만 바뀌며 계속 반복 재생하는 것은, 그것은 어쩌면 역사의 실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애도해야 할 것들을 한 번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애도하지도 못하는 생명의 실종이 많아질수록, 역사와 함께 우리의 정신도 점점 더 실종될 것이 분명하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말하는 순간, 셀프 면죄부로 전락해버리는 그 공허한 구호를 잠시 멈추자. 오히려 우리가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종종 잊고 있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실종자들의 주검을 수습할 수 있도록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 특조위의 재구성 및 연장 등, 할 수 있는 모든 시민적 요구를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른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2017년이 되었습니다. 찾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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