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딸아이가 드디어 졸업을 한다. 마지막 학기 수강 과목의 통과를 확인하고 뉴질랜드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1년 반의 휴학을 빼고도 6년 만의 졸업이니 자기도 감격했는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 가능을 알려줬다. 입학하고 첫 학기, 좀 다니나 싶더니 음주가무와 연애까지, 청춘을 알차게 보내기 시작했다. 첫 학기 성적은 반타작… 관성인지 다른 할 일이 없어서인지 두번째 학기를 등록했다. 하지만 몇 주 지나 보니 여전히 대학생이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화로 자퇴를 권고했다. 딸아이는 정말이냐고 묻고, 내가 그렇다고 담담히 말하자,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목소리로, “그래 알았어, 내일 가서 휴학할게!” 밝고 맑게 전화를 끊었다. 자퇴성 휴학을 한 후, 딸아이는 집을 나갔다. 본격적으로 독립하겠단다. 아이 엄마는 극력 거부했으나 스무살 딸아이의 의지(라 쓰고 고집이라 읽는다)를 이길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며 식당 직원으로 일해서 의식주를 해결했다. 책이라고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남는 시간은 오직 놀고 또 놀면서 2년 가까이를 살더니, 어느 날 지친 목소리로 이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안 된다고 했다. 갈 데 없어 가는 학교라면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딸아이는 자기 ‘의지’대로 복학을 했다. 하지만 돌아간 학교에서도 지리멸렬, 지지부진의 삶이었다. 아버지로서 이런 과정을 봐주기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잠수를 타거나 연락이 안 되는 것도 힘들었다. 성적이 그런대로 나오거나 자기가 좀 열심히 한다 싶을 때면 전화도 잘 받고 문자에 답신도 바로 한다. 하지만 성적이 안 나오거나 시험을 망치면 전화도 안 받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느 방학에 만나 본격적으로 싸웠다. 왜 아버지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안 받고, 문자도 네 마음대로 씹냐고, 왜 자꾸 자신을 숨기고 뒤로 물러나냐고, 왜 떳떳하게 앞으로 나와서 아버지와 대면하지 못하냐고 울분을 토했다. 서로 핏대를 높여 싸우다가 딸아이가 절규한다. “내가 내세울 게 있어야지, 내가 뭐 하나 해놓은 게 없는데 무슨 낯으로 떳떳이 아빠 앞에 나설 수가 있어?”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겨우 웃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말했다. “딸아, 네 나이에, 이제 겨우 22살에 내세울 게 있다면 그게 더 웃기는 거야. 네 나이 때는 내세울 게 없는 것이 정상 아니냐?” 우리의 싸움은 그것으로 종료되고 급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물론 술이 빠질 리는 없었다. 딸아이는 이날의 일이 무척 감사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어쨌건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 청년은 어렵사리 삶의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은 배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배움은 자신의 의지로만 가능하며, 배움이 꼭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다. 이 딸이 대학원을 간다. 심지어 내 후배가 되었다. 딸아이는 자신의 불안과 오만을 잘 견뎌준 아버지가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괜찮다”고 말해준 아버지가 감사하단다. 아버지는 견뎌주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식이 어떤 좌절을 겪을 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우리 부녀 관계는 훈훈하다, 일단 지금은….
칼럼 |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아버지란 무엇인가? |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딸아이가 드디어 졸업을 한다. 마지막 학기 수강 과목의 통과를 확인하고 뉴질랜드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1년 반의 휴학을 빼고도 6년 만의 졸업이니 자기도 감격했는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졸업 가능을 알려줬다. 입학하고 첫 학기, 좀 다니나 싶더니 음주가무와 연애까지, 청춘을 알차게 보내기 시작했다. 첫 학기 성적은 반타작… 관성인지 다른 할 일이 없어서인지 두번째 학기를 등록했다. 하지만 몇 주 지나 보니 여전히 대학생이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화로 자퇴를 권고했다. 딸아이는 정말이냐고 묻고, 내가 그렇다고 담담히 말하자,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목소리로, “그래 알았어, 내일 가서 휴학할게!” 밝고 맑게 전화를 끊었다. 자퇴성 휴학을 한 후, 딸아이는 집을 나갔다. 본격적으로 독립하겠단다. 아이 엄마는 극력 거부했으나 스무살 딸아이의 의지(라 쓰고 고집이라 읽는다)를 이길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며 식당 직원으로 일해서 의식주를 해결했다. 책이라고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남는 시간은 오직 놀고 또 놀면서 2년 가까이를 살더니, 어느 날 지친 목소리로 이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안 된다고 했다. 갈 데 없어 가는 학교라면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딸아이는 자기 ‘의지’대로 복학을 했다. 하지만 돌아간 학교에서도 지리멸렬, 지지부진의 삶이었다. 아버지로서 이런 과정을 봐주기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잠수를 타거나 연락이 안 되는 것도 힘들었다. 성적이 그런대로 나오거나 자기가 좀 열심히 한다 싶을 때면 전화도 잘 받고 문자에 답신도 바로 한다. 하지만 성적이 안 나오거나 시험을 망치면 전화도 안 받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느 방학에 만나 본격적으로 싸웠다. 왜 아버지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안 받고, 문자도 네 마음대로 씹냐고, 왜 자꾸 자신을 숨기고 뒤로 물러나냐고, 왜 떳떳하게 앞으로 나와서 아버지와 대면하지 못하냐고 울분을 토했다. 서로 핏대를 높여 싸우다가 딸아이가 절규한다. “내가 내세울 게 있어야지, 내가 뭐 하나 해놓은 게 없는데 무슨 낯으로 떳떳이 아빠 앞에 나설 수가 있어?”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겨우 웃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말했다. “딸아, 네 나이에, 이제 겨우 22살에 내세울 게 있다면 그게 더 웃기는 거야. 네 나이 때는 내세울 게 없는 것이 정상 아니냐?” 우리의 싸움은 그것으로 종료되고 급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물론 술이 빠질 리는 없었다. 딸아이는 이날의 일이 무척 감사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어쨌건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 청년은 어렵사리 삶의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은 배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배움은 자신의 의지로만 가능하며, 배움이 꼭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한다. 이 딸이 대학원을 간다. 심지어 내 후배가 되었다. 딸아이는 자신의 불안과 오만을 잘 견뎌준 아버지가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괜찮다”고 말해준 아버지가 감사하단다. 아버지는 견뎌주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식이 어떤 좌절을 겪을 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우리 부녀 관계는 훈훈하다, 일단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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