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육군 대장이면 도대체 어떤 인격을 갖추고 있을까? 도대체 어느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어느 만큼의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어야 저 위치에 갈 수 있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소위로 임관해 그 자리까지 승진하는 동안 수많은 시련과 난관을 겪었을 테니, 그 내공이 얼마나 깊고 무한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언론에 보도된 한 육군 대장 부부의 행동을 보니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행동은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면 안 될 것 같다. 필자가 이해하는 갑질이란 어떠한 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권력을 더 많이 쥐고 있는 갑이 계약 관계를 넘어서는 봉건적 굴종 관계를 을에게 요구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굴욕감을 줌으로써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려는 병리적 의도가 포함되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 간 또는 조직 간 계약 관계의 권력과 달리, 학교를 포함한 국가기관과 개인이 관계를 맺을 때는 계약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이것은 일종의 감금상태를 동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갑질 논란과는 다른 차원이 된다. 예를 들어, 학교라는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떤 교수가 자신의 사적 업무에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을 마구 부려 먹는다고 치자. 심지어 자기 부모의 장례식에, 지도하는 석박사 학생 십수 명을 동원해서 2박3일간 온갖 시중을 다 들게도 한다. 하지만 그 교수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더 문제는 학생들도 그 일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부당한 일이지만 교수의 사적 행사를 돕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논문도 통과해야 하고, 졸업 후에도 좁은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도교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학생들은 심리적 감금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이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런 행동을 하는 교수들 중에는, 자신은 외국에 유학 가서 ‘나이스’한 지도교수 밑에서 부당한 피해라고는 조금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왜 한국에만 오면 이런 사람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외국에서 교수를 한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니, 이는 한국 사회가 부여하는 국가기관이나 교육기관에 대한 권력이 과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내 삶의 향방과 성패가 달렸다고 믿고 있고, 권력자는 그것을 무기로 약자들을 착취하려 들면 심리적 굴종의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부당한 권력은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할 때가 많다. 개인 간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곳곳에서 개인의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강한 권력 즉, 누군가 사용하는 부당한 권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갑질을 막아야 할 학교나 군대 등, 국가기관이나 또는 국가기관의 책임자가 패악을 부린다면 그것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범죄이며, 그것은 종내 우리를 공포와 심리적 좌절로 몰고 간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한 젊은 병사들이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가졌을 가능성이 큰) 육군 대장의 집에 감금되어 각질을 줍고 미나리를 다듬고 전자팔찌를 찬 채 병사들 또래인 그 집 아들의 음식 시중까지 들었다니, 기가 차다. 그래서 언론에도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갑질’로만 보이는가?
칼럼 |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갑질, 너무 낭만적인 이름 |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육군 대장이면 도대체 어떤 인격을 갖추고 있을까? 도대체 어느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어느 만큼의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어야 저 위치에 갈 수 있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소위로 임관해 그 자리까지 승진하는 동안 수많은 시련과 난관을 겪었을 테니, 그 내공이 얼마나 깊고 무한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언론에 보도된 한 육군 대장 부부의 행동을 보니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행동은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면 안 될 것 같다. 필자가 이해하는 갑질이란 어떠한 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권력을 더 많이 쥐고 있는 갑이 계약 관계를 넘어서는 봉건적 굴종 관계를 을에게 요구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굴욕감을 줌으로써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려는 병리적 의도가 포함되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 간 또는 조직 간 계약 관계의 권력과 달리, 학교를 포함한 국가기관과 개인이 관계를 맺을 때는 계약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이것은 일종의 감금상태를 동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갑질 논란과는 다른 차원이 된다. 예를 들어, 학교라는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떤 교수가 자신의 사적 업무에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을 마구 부려 먹는다고 치자. 심지어 자기 부모의 장례식에, 지도하는 석박사 학생 십수 명을 동원해서 2박3일간 온갖 시중을 다 들게도 한다. 하지만 그 교수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더 문제는 학생들도 그 일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부당한 일이지만 교수의 사적 행사를 돕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논문도 통과해야 하고, 졸업 후에도 좁은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도교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학생들은 심리적 감금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이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런 행동을 하는 교수들 중에는, 자신은 외국에 유학 가서 ‘나이스’한 지도교수 밑에서 부당한 피해라고는 조금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왜 한국에만 오면 이런 사람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외국에서 교수를 한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니, 이는 한국 사회가 부여하는 국가기관이나 교육기관에 대한 권력이 과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내 삶의 향방과 성패가 달렸다고 믿고 있고, 권력자는 그것을 무기로 약자들을 착취하려 들면 심리적 굴종의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부당한 권력은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할 때가 많다. 개인 간의 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곳곳에서 개인의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강한 권력 즉, 누군가 사용하는 부당한 권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갑질을 막아야 할 학교나 군대 등, 국가기관이나 또는 국가기관의 책임자가 패악을 부린다면 그것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범죄이며, 그것은 종내 우리를 공포와 심리적 좌절로 몰고 간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한 젊은 병사들이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가졌을 가능성이 큰) 육군 대장의 집에 감금되어 각질을 줍고 미나리를 다듬고 전자팔찌를 찬 채 병사들 또래인 그 집 아들의 음식 시중까지 들었다니, 기가 차다. 그래서 언론에도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갑질’로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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